▲ 안재휘<br /><br />서울본부장
▲ 안재휘 서울본부장

`양약고어구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忠言逆於耳)`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이 구절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이다. 흔히 사용하는 `입에 쓴 약이 명약(名藥)`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작심 비판을 기점으로 정점을 향해 치달아오른 청와대-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갈등을 놓고 대구·경북의 민심이 큰 걱정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이 옳다느니, 유승민이 옳다느니 여론도 갈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폴스미스가 대구 동구을 주민 1천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유 원내대표의 사퇴 반대가 51.1%, 찬성 45%로 나왔다는 자료도 발표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판한 대로 `유 원내대표가 자기이익과 자기 정치를 했다`는 응답은 38.6%인 반면, `개인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50.3%로 조사됐다. 하지만, 사실상 어떤 응답이 좀 더 나왔느냐 하는 얘기는 의미가 없다. 지역 출신의 걸출한 정치인들끼리 앙앙불락하게 된 현실 자체가 이미 재앙이다.

유승민은 대구·경북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인물이다. 그의 명민함과 곧바른 기질은 정치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귀한 자질이다. 지난 2월초 여당의 새 원내대표로 당선됐을 때, 지역민심의 기대가 컸던 것도 일찍이 유승민의 높은 역량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승민이 불과 5개월여 만에 백척간두 위태로운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 이유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송죽같이 꼿꼿한 `선비기질`에서 기인한다. 오늘날 그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청와대와의 불협화음 폭발지점은 4월 8일 그가 국회에서 한 `대표연설`이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서슴없이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연설에서 유승민은 “134.5조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면서 `새누리당의 반성`을 과감하게 말했다. 또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2조원”이라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고백했다. 특히 경제전문가로서 “성장잠재력과 상관없는 단기부양책이 아니라 사회적 대타협에 필요한 곳에 예산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유승민은 이 연설에서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소신과 함께 새누리당이 펼쳐가야 할 `개혁적 보수`의 지향점을 일목요연하게 펼쳐보였다. 이 연설은 보수 새누리당의 변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이례적으로 야당까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청와대만은 유승민의 생각을 용인할 의지가 전혀 없었던 듯하다.

개혁적 보수의 소신을 가진 집권당 원내대표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극좌 진보세력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데 있다. 새누리당 지지표의 확장성을 높인다는 장점도 있다. 자존심 높은 경제전문가로서 소신을 과감히 말하는 유 원내대표의 희망 속에는 새누리당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들이 오롯이 존재한다.

의원총회에서 선출된 원내대표를 청와대에서 찍어내게 되는 불합리를 넘어서, 유승민이 원내대표 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은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의 한계를 드러내는 불행한 일이다. 물론, 옳고 그름을 떠나 유승민이 자신의 구상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다소 현실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난 권력 테크닉의 문제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승자가 남을 수 없는 이상한 게임의 끝에서 허탈에 빠질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 같다. 이번 사태로 여러 정치 지도자들의 이미지에 `협량(狹量)`의 문신이 남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원조 친박 한선교 의원이 쓴 “10여명의 `우리만이 진짜 친박`이라는 배타심이 지금의 오그라든 친박을 만들었다. `오직 나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친박`이 지금의 소수(少數) 친박을 만들었다”는 자성록이 새삼 눈에 띈다. `양약고어구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忠言逆於耳)`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지도자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