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람들
(1) 포항해경안전서 특수구조대 김병길 경사

▲ 지난 2013년 10월 15일 파나마선적 화물선 청루(CHENGLU)호가 포항 영일만항 북방파제와 충돌한 뒤 바닷속으로 대부분 모습을 감춘 상황. 최대 20m/s의 강풍속에 해경 특수구조대 대원들이 선박 마스터(돛대) 위의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 로프를 연결하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웅이 존재한다. 일상 속에서도 경찰관, 소방관 등 헌신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수호하는 사람들이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구조활동을 펼친다. 특히 이들은 쓰나미 등 전 지구적으로 자연재난이 확산되고 세월호 등 인재가 빈발하는 `위험사회`에서 그 역할이 더욱 커가고 있다. 본지는 기획시리즈 `안전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람들`을 연재해 이들의 활약을 짚어보고 안전 사회를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

청루호·세월호 구조대 활약 `사력`
시신 찾을 때마다 눈물 삼켜
한 것 뭐 있나 비난땐 정신적 고통

10년 베테랑이지만 바다는 두려워
구조 전문인력 아직 부족한 현실

침몰해가는 난파선에서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뱃사람에게 해상구조대원은 한가닥 동아줄이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전혀 모르는 타인을 위해 차가운 바다로 거침없이 몸을 던진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포항해양경비안전서 특수구조대 김병길 대원을 만나 `바다의 영웅`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포항앞바다 최대규모 선박사망사고 `청루호 침몰`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생존자가 버티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죠” 포항해양경비안전서 김병길(37)특수구조대원은 포항 앞바다에서 발생한 화물선침몰사고를 떠올렸다.

지난 2013년 10월 15일 포항 영일만항 앞바다. 닻을 내리고 정박하던 파나마 선적 화물선 청루호(8천t급)가 순간 최대 풍속 20m/s에 가까운 바람과 6~8m의 강한 파도에 육지 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청루호는 북방파제 끝 부분과 수차례 충돌한 뒤 이날 오후 5시46분께 침몰했다. 긴급 출동명령이 떨어졌을 때 그는 병원에 있었다. 첫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기쁨을 만끽하는 찰나 사건이 터진 것이다. 9개월간 손꼽아 기다려온 순간이었지만 정작 아들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구조대사무실로 급박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동 중 영일만항 앞바다의 화물선이 침몰했고, 19명의 승선원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장 사고해역으로 떠났지만 집채만 한 파도와 어둠이 깔려 구조활동이 어려웠다. 하늘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날 마음으로는 밤새 구조활동을 펼쳤어요. 급박한 상황인데 악천후로 구조활동을 못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동이 틀 무렵인 오전 5시께 다시 사고해역으로 향했다. 현장의 기상상황이 혹독했던 터라 인명구조보단 시신인양작업에 가까웠다. 사체를 인양하던 중 불행 중 다행으로 침몰한 배의 돛대 부분에서 서로 꼭 끌어안고 버티고 있는 생존자 등 8명을 발견하고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오전 발견한 사체는 9구로 2명의 실종자를 아직 찾지 못한 상황. 해상수색작업은 잠수수색작업으로 이어졌다.

“실종자는 죽은 사람, 산 사람 구분하지 않고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살아 있다고 확신했을 때` 더 다급함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사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생존자로 보고 찾습니다”

□10년 잠수 베테랑도 두려운 바닷속

오후 6시 풍랑주의보가 몰아친 후 해저는 혼탁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수복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다 기운 탓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선체에 가까워지자 `끼잉끼잉`괴이한 소리에 이어 갑자기 `쾅쾅`거리는 굉음이 들렸다. 침몰선박의 갑판에 설치된 크레인들이 조류에 따라 움직이는 소리였다. 음산한 분위기에 공포가 엄습했다. 악조건 속의 선내 수색작업은 며칠 동안 이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실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잠수 특기로 해경에 임용된 그는 10년간 수백 번의 다이빙을 한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잠수가 두렵다고 한다.

“다이빙을 할 때마다 `못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닷속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심지어 훈련 때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가 두려움 속에서도 잠수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해줄 수 있는 동료를 믿기 때문이다.

“`목숨을 공유하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까울 수밖에 없어요. 다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데 서로 사생활도 다 털어놓을 정도로 끈끈한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웃음)”

□괴로웠던 세월호 현장

포항해양경비안전서 특수구조대는 지난해 전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 현장에도 투입됐다. 김병길 대원은 팽목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며 반드시 생존자를 찾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서해의 거센 해류는 구조작업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수색작업이 더디자 언론과 실종자 가족들의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다.

“세월호 현장은 로프를 감고 들어가도 로프가 끊어질 정도로 강한 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루 두번 조류가 약해지는 시간 사력을 다했는데도 `하는 게 뭐냐?`는 비난을 받았고, 지친 몸보다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 구, 두 구 시체 인양작업은 계속됐다. 선내의 시신을 찾을 때마다 그는 눈물을 삼켰다. 더구나 어린 학생의 싸늘한 주검과 마주할 때면 가슴이 찢어졌다. 악몽 같은 수색작업은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세월호참사로 모두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의 실종자는 끝내 찾지 못한 채 11월 11일 수색작업이 종료됐다. 구조대는 시신을 유족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대부분 수색작업을 종료한다. 유족의 오열을 뒤로하고 현장을 떠나는데 애꿎은 구조대를 탓하거나 시비를 거는 유족들도 적지 않다.

“해양사고가 생존율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유족에게 시신을 넘겨주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일부 유족들은 슬픔을 구조대를 원망하고 욕설하는 것으로 표출하시는데, 우리 구조대원들은 우리는 몸이 힘든 것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곤 합니다”

 

▲ 포항해양경비안전서 특수구조대 김병길 경사
▲ 포항해양경비안전서 특수구조대 김병길 경사

□26세, 어릴 적 꿈 군인·경찰 모두 이뤄

해양경찰로 임용되기 전, 그는 특수전사령부 부사관으로 5년 동안 복무하면서 대테러 업무를 수행했다. 또래 친구들은 대학으로 진학하던 갓 20살. 그는 병무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직한 외모와 다부진 몸매를 본 해병대, 특전사 등의 면접관들이 앞다퉈 그를 불러세웠다. 여러 곳 중 그가 선택한 곳은 바로 특전사. 그런데 이유가 조금 엉뚱했다.

“그때는 특전사, 해병대, SSU 등의 군부대가 뭐하는 곳인지도 잘 몰랐어요. 입대 날짜가 가장 빠른 특전사를 선택했는데, 좀 특이한가요?(웃음). 어떤 이유든 그 당시 특전사를 지원해 군생활을 제 인생에 가장 잘한 일입니다”

군생활을 마친 후 그는 “해경특채 시험을 한 번 쳐봐라”는 지인의 권유로 시험 삼아 지원한 첫번째 시험에서 단박에 붙었다. 어릴 적 그의 꿈은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군인과 경찰이었는데, 2005년 해경임용으로 26살 나이에 2가지 꿈을 모두 이룬 셈이다.

좋은 일은 계속 됐다. 처음 발령받은 동해에서는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2011년 백년해로를 약속한 그의 아내 이온누리(32)씨도 바로 해경 직원이다. 현장의 상황을 잘 아는 아내는 늦은 시각 비상출동이 걸려도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로 그의 걱정을 덜고 있다.

“결혼 전에는 물불 안 가리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는데, 지금은 책임져야 할 아내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제 안전을 생각하게 되죠.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앞으로 구해야 할 많은 사람이 제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아내의 충고로 출동 전 장비점검을 꼼꼼히 하는 등 안전에 유의하고 있습니다”

□해양경비안전서로 바뀌며 구조역량 크게 강화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사건에서 초동 대처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지난해 11월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개편됐다. `범죄 수사`의 역량을 `안전·구조`로 집중, 업무 기조를 급선회한 것이다. 일선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는 그는 기관 전반적인 구조역량이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구조업무에 투입될 전문구조인력 보강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해양안전사고는 육상과 달리 골든타임이 1시간인데, 현재 상황으로는 이마저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포항해경만 보더라도 담당구역 해안선이 451km에 이르는데, 긴급출동을 하더라도 관할 끝 지역까지 특수구조대가 도착하려면 2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더 많은 특수구조대원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안전을 높이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좋아하던 술을 해경 특수구조대로 생활하면서 끊었다. 술을 마시면 그날은 물론 다음날도 잠수할 수 없기에, 자신이 빠지면 동료가 위험을 무릅쓰고 차가운 물속으로 한 번 더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 년 365일 퇴근 후에도 대한민국 해양경비안전서 특수구조대원으로 살아간다.

/안찬규기자 ac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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