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서 일궈낸 영일만·광양만 신화
허허벌판서 일궈낸 영일만·광양만 신화
  • 이창형기자
  • 등록일 2015.06.22 02:01
  • 게재일 2015.0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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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대표기업을 가다
(1) 포스코

▲ 1976년 5월 가동된 이래 두 차례의 개수를 거치며 38년간 6천900만톤의 쇳물을 생산했던 포항 2고로가 95일간의 개수를 마치고 지난달 12일 국내 최초로 4대기 조업에 들어갔다. 권오준 회장이 2고로에 화입하고 있다.
▲ 1976년 5월 가동된 이래 두 차례의 개수를 거치며 38년간 6천900만톤의 쇳물을 생산했던 포항 2고로가 95일간의 개수를 마치고 지난달 12일 국내 최초로 4대기 조업에 들어갔다. 권오준 회장이 2고로에 화입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자본과 기술, 경험은 물론 부존자원마저 없어 일관제철소의 건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꿈과 같아 보였다. 그러나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故 포스코 명예회장)을 비롯한 포스코맨들은 온갖 어려움을 딛고 영일만에 종합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했고, 잇달아 광양만에 세계 최신예 최대 제철소 건설을 성공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영일만과 광양만의 신화`라고 이야기한다.


1970년 1기 설비 첫삽 뜬 후
3년2개월만에 첫 쇳물생산 감격 맛봐

광양에 세계최대 단일제철소 설립
철강 자립도·국제 경쟁력 제고 방점


◇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일관제철소 건설

△5차례 건설시도 무위, 박정희 대통령 취임후 구체화

포항제철소가 건설되기 이전 우리나라의 철강산업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한국 정부가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초의 종합제철 건설 계획을 세운 것은 1958년 자유당 정부 시절이었으나 연간 선철 20만톤 생산을 목표로 했던 이 계획은 자금 부족, 정국 혼란 등으로 무산되고 말았으며, 결국 다섯 차례에 걸친 제철소 건설 시도는 모두 무위로 끝났다.

종합제철 건설 계획이 보다 구체화된 것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부터다.

정부는 철강산업이 다른 산업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빈곤에서 탈피하고 자립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제일 먼저 기초를 다져야 할 필수 산업임을 인식하고, 조국 근대화라는 국가적 비전을 이루기 위해 종합제철건설을 구상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존슨(Lyndon B. Johnson)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면서 피츠버그 (Pittsburgh) 철강공업지대를 찾아가 미국의 제철소 건설 기술 용역회사인 코퍼스(Koppers Co.,Inc)의 포이 회장을 만나 사업실현에 필요한 외자를 조달하기 위해 국제 제철차관단을 구성할 것을 제의했다.

이로써 1966년 12월 미국의 코퍼스를 중심으로 종합제철 건설을 위한 5개국 8개사가 참여하는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 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이 정식으로 발족했다.

△국제차관단 와해로 대일청구권 자금 전용 구상

1967년 6월 정부는 관련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조강 연산 300만톤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할 수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 월포, 포항, 삼천포, 울산, 보성 중 지원시설과 투자 면에서 가장 유리한 포항을 건설 예정지로 결정했다.

▲ 1974년 형산강에서 바라본 포항제철소 전경
▲ 1974년 형산강에서 바라본 포항제철소 전경
그해 9월 종합제철 건설사업의 실수요자로 대한중석㈜을 선정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재원확보 계획이 불투명한 상태였지만 1968년 4월 1일 34명의 임직원들로 창립식을 갖고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공식 출범하게 됐다.

1968년에 들어 KISA와 IBRD로부터 한국의 종합제철 건설을 위한 차관 제공에 부정적으로 돌아서자 당시 박태준 사장은 농어업분야에 사용하기로 돼 있는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는 아이디어를 구상, 한국 정부는 물론 일본 정재계를 직접 설득했다.

결국 포항제철소 건설 계획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고 일본으로부터 차관과 기술을 제공받는 방법으로 수정됐고, 69년 8월 제3차 한일각료회담에서 일본정부가 종합제철 건설 사업을 지원키로 함으로써 본격화됐다.

이로써 1970년 4월 1일 온 국민의 성원 속에 조강연산 103만톤 규모의 1기 설비를 착공했다. 이후 3년 2개월만인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를 준공, 첫 쇳물을 생산하는 역사적인 감격의 순간을 맞이했다.

△사상 초유의 대역사, 매기 마다 공기단축

1981년 2월 18일 조강연산 850만톤 규모의 포항 4기 설비종합 준공에 이르기까지 포항제철소 건설사업은 규모나 물량, 공사 금액, 기간 등 어느 모로 보나 사상 초유의 대역사의 연속이었다.

포스코는 주설비 착공 13년만에 910만톤 체제의 대단위 제철소를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건설비로,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완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72년 7월 후판공장 가동 이후부터는 조업과 건설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매기(每期)마다 공기(工期)를 단축해 왔다.

특기할 일은 260만톤 체제의 2기 설비를 준공한 76년 5월 이후부터 포스코의 철강생산 능력이 북한을 앞지르기 시작하여 910만톤 체제가 완료된 83년 5월에는 2배 이상의 조강생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1기 가동 6개월만인 73년 말 46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래 매년 흑자행진을 지속하면서 2기부터 자체자금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설비확장 투자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세계 최신예 광양제철소의 탄생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성공적인 제철소 건설에 고무되어 포항제철소 확장사업과는 별도로 조강 연산 1천만톤 규모의 제2제철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으로 인한 석유파동, 74년 말을 전후한 철강경기 침체 등으로 무산되고 말았으며 우여곡절 끝에 1978년 10월 제2제철 실수요자가 포스코로 확정되면서 광양에 4기에 걸친 총 1천140만톤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립이 시작됐다. 특히 포스코는 국내 건설사상 초유인 바다 위에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겨울 바다의 험한 파도, 매서운 바람과 싸우면서도 과거의 경험에서 축적된 역량을 토대로 공기를 단축하고 투자비를 대폭 절감했다. 또한 동일 설비 및 기술을 채택함으로써 조업의 안정성을 도모함으로써 국내 철강 자급도 향상은 물론 국제 경쟁력도 높였다.

1992년 10월2일 4반세기 대역사 종합준공을 함으로써 광양제철소는 최적의 생산규모를 갖춘 세계 최대의 단일제철소이자 21세기 최신예 제철소로 탄생됐다. 
 

◇ 민영화 성공으로 새로운 도약

△바람직한 민영화의 모델


포스코는 한국전력이나 KT 등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다른 공기업과는 달리 정부가 대주주인 상법상의 주식회사로 설립함으로써 민간기업의 효율성과 전문경영인에 의한 철저한 책임경영을 견지해 왔다.

1998년 7월 우리나라 정부는 21세기 WTO 체제 출범 등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의 도래로 경직된 공기업 형태의 경영구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고 특히 97년 IMF 외환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해 정부지분 매각 수입을 국민 경제의 구조조정 재원으로 활용함으로써 국가경제 회복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해 포스코를 최우선 민영화 대상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는 포스코가 여타 공기업과는 달리 시장경제의 원리가 최우선시 되는 국제무대에서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업성이 강한 기업으로, 국내외 투자가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철강이라는 소재 산업의 특성상 특정 세력이 대주주가 될 경우 사적 목적을 위해 기업자원을 활용함으로써 경제력 집중 과 시장질서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대주주 없이 지분을 골고루 분산해 민영화했다.

△선진 지배구조, 투명경영 모범기업

포스코는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체제와 선진형 기업지배 구조의 확립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2000년 10월 민영화 이후 회사를 경영하는 전문경영진과 주주 권익을 대변하는 이사회가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전문 경영인에 의한 책임 경영체제로 발전했다.

또한 2006년에는 부문별 책임경영제를 도입해 회장은 경영을 총괄하며 주요 결정만 내리고 5개 각 부문별 책임 임원에게 경영상 결정권한을 이양해 급변하는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포스코는 선진형 지배구조 정착을 위해 1997년부터 사외이사 제도를 국내 대기업에서는 최초로 도입했으며, 현재는 사외이사가 전체 이사회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2006년부터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해 사외이사가 주축인 이사회가 CEO의 경영활동 감시 및 견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 투명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 2015년 형산강에서 바라본 포항제철소. 왼쪽부터 3,2,1고로
▲ 2015년 형산강에서 바라본 포항제철소. 왼쪽부터 3,2,1고로

14개국에 29개 회사·47개 공장 가동
7회연속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

지난해 취임 권오준 CEO 새 전략
`내실있는 성장` 경영 패러다임 기대감


◇ 새로운 성공 역사 창조

△`POSCO the Great`

이제 포스코는 명실상부 글로벌 No.1 철강사로 우뚝 섰다.

포스코는 일본·중국·동서남아·미국 등에 거점 법인을 운영하면서 전 세계 14개국에 29개 회사, 47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 2014년 한해 동안 뽑아낸 쇳물의 양으로는 세계 6위이지만, 경쟁력으로는 No.1이다. 세계적인 철강 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가 전 세계 36개 철강사를 대상으로 평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에 5년간 7회 연속 1위로 선정됐다. 기술혁신·인적자원 등 4개 항목 최고 점수를 받았다.

지난해 회장으로 취임한 권오준 CEO는 포스코의 지난 성공 신화를 바탕으로 또 다른 50년을 준비하고 있다. `POSCO the Great`로 집약되는 경영 전략이 그것이다.

 외형 성장 위주에서 내실 있는 성장, 즉 가치 중심의 경영으로 포스코의 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포스코그룹의 투자사업을 조정해나가고 있다.

우선 철강투자는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솔루션마케팅 강화, 글로벌 고객서비스체계 구축 등 철강 본원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투자 위주로 재편한다.

철강사업에서는 자동차·해양·에너지 등 수익성과 성장성이 양호한 7대 전략산업을 선정해 판매를 확대하고, 수익성이 우수한 월드 프리미엄(world premium) 제품 판매 비율도 높일 계획이다.

또한 시장이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적기에 개발하고 사용기술도 함께 제공하는 솔루션마케팅을 강화하는 한편, 2016년까지 해외 전 생산법인의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포스코의 신경영전략이 순조롭게 실행될 경우 2016년 단독기준 32조원 매출액에 3조원의 영업이익, 9%대 영업이익률을, 연결기준으로는 78조원의 매출액에 영업이익 5조원, 6%대 영업이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부채비율도 대폭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립 이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포스코인들의 저력으로, 포스코가 새로운 성공 역사를 창조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창형기자 chlee@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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