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언제부턴가 대학축제가 `대동제`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생겨난 새로운 풍속도(風俗圖) 아닐까 한다.

1970년대 후반까지 대학축제는 소비문화의 재탕(再湯)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수봉의 `축제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쌍쌍파티가 대학축제의 정점(頂点)이었다. 남녀교제가 제한(制限)되었던 시절에 합법적인 시공간(時空間)에서 남녀가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었다. 그런 달콤함과 달착지근한 시간대를 넘어서 광주 민주화운동의 원인을 미국에서 찾아내고, 전두환 일당을 학살자(虐殺者)로 규정하는 세대가 축제와 학생운동을 주도(主導)하게 된 것이 1980년대 초다.

축제라는 이름에 내재(內在)한 무차별적(無差別的)인 소비문화와 대중문화 추수주의(追隨主義)를 극복하고자 내걸었던 명칭변경(名稱變更)이 아마도 `대동제` 아니었을까?!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 소소한 차이를 극복하여 커다란 하나가 되자는 공동체(共同體) 의식의 발로(發露)가 `대동제`란 이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2천500년 전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주창한 공자가 무척이나 행복해할 것 같다.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 주장을 편 공자 아닌가. 서로 화합(化合)하되 같지 아니한 경지(境地)를 `화이부동`이라 한다. 일곱 빛깔 무지개를 연상(聯想)하면 편할 것이다. 각기 다른 빛깔을 가지고 있기에 같지 않지만, 다 같이 모여 찬란한 무지개라는 화합의 마당을 연출하는 무지개. 각각의 빛깔이 스스로를 주장하지만, 그것들은 화합하여 아름다운 무지개를 형성(形成)해낸다. 고유함을 잃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화합하는 전체를 만들어내는 오묘(奧妙)함이 있다.

`동이불화` 한다는 것은 실상(實狀)은 같지만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소인 하나하나는 별반 (別般) 다르지 않다.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관계 (利害關係) 때문에, 지역성 (地域性) 때문에, 혈연과 학연 때문에, 패거리주의 때문에 결단코 화합하지 못한다. 각자의 목표(目標)와 속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엇비슷한 인간들끼리 갑론을박 (甲論乙駁) 하며 각축(角逐)하는 꼴이 승냥이들이 썩은 시체 놓고 아귀다툼 하는 꼴과 다르지 않다. 그것을 일컬어 `동이불화`라 한다.

1980년대 대학에서 태동(胎動)한 대동제는 `동이불화`를 버리고 `화이부동`의 세계를 지향(志向)하는 의미심장(意味深長)한 행사였다. 대학은 거대한 용광로(鎔鑛爐)였고, 시대를 고뇌(苦惱)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망(熱望)하는 청춘으로 대학은 활기가 넘쳐났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강의실에서 시국토론회가 연중무휴(年中無休)로 열렸던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 1980년대. 그렇게 그들은 `87체제`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오늘날 대학의 대동제는 한마디로 요약(要約)하면 사흘연속 `술판`이다. 술판을 준비하는 학생도 오가며 술 팔아주는 교수와 학생도 사흘 내내 술과 안주 냄새로 골치를 썩여야 하는 `대주제(大酒祭)`가 되고 말았다. 비위생적(非衛生的)인 안주(按酒)와 터무니없는 바가지, 공허(空虛)한 연예인들 이야기와 프로야구 얘기. 그런 허접한 언어들과 버려진 안주 따위의 악취(惡臭)가 알코올과 뒤섞인다. 대동제는 그것들이 남긴 잉여(剩餘)의 감정과 차고 넘치는 금전(金錢)으로 해마다 점철(點綴)되고 있다!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87체제`가 녹슬고 군내 나는 것처럼 대동제 역시 그 역사적인 소명이 다한 것 같다. 이제 그만 놀아 제키고 교정에서 냄새 나는 술판 거두고 각자 연구실(硏究室)과 강의실(講義室)과 도서관(圖書館)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술은 술집이나 밥집에서 먹고 마시면 되지 않겠는가?!

대동은 술이 아니라, 이웃의 슬픔과 절망(絶望)과 고독(孤獨)을 보듬으려는 보편적인`연민(憐憫)`과 `동정(同情)`에서 발원한다. 술에 취한 눈을 크게 뜨고 사위(四圍)를 둘러보라. 거기서 대동은 비로소 시작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