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원
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

지하철에서 서너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이 아이는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으로 오르고 싶어했다.

어머니는 계단이 가파르고 높았기에 아이 손을 이끌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했다. 아이는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어머니의 완력에 이끌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아이는 “엄마, 미워!”하고 지하철 내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쳐댔다.

어머니는, 가파르고 높은 계단이 어린 자식에게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뜻을 모르는 아이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어머니가 완벽한 문제해결사가 되어 자식의 문제를진단하고 해결책을 제공해주는 것이 최선일까?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가파른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도, 아이가 계단을 오르다가 포기할 때 그 아이를 업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한번쯤은 아이가 자신의 선택 결과를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릇된 행동으로 인한 불편함을 직접 경험하여 행동을 수정할 기회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유아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받는 조건 아래에서 행동의 결과를 경험해야 한다. 제때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늦게 일어나면 학교에 지각하는 등은 행동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행동의 자연적 결과를 체험하여 아는 것은, 아이가 무엇을 할지를 스스로 선택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어머니가 문제해결사가 되어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것은, 성인의 힘과 권위에 아이를 복종시키는 것이며, 특히 아이를 에스컬레이터로 잡아 끄는 어머니의 완력은 유아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폭력일 수 있다.

행동의 결과를 경험케 하는 것은, 아이들이 성인에게 복종하도록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 있는 결정을 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다.

다만 부모가 자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초연해지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이 방법을 연기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부모가 잘못된 행동과 행동 주체자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고, “너의 잘못된 행동은 싫지만 너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필자가 재학시절 부모교육 수업을 한 학기 수강하고 나서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을 한 단어로 축약한다면 그건 `인내`일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테크닉과 이론들은 결국 `인내`의 두 글자로 수렴되는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멈추고 자녀의 말을 듣거나 자녀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이들이 좌충우돌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기다려주는 것, 이해하기 힘든 아이의 생각과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등 부모가 되는 길은 기나긴 수양의 길이다.

성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성리학에서 마음 수양이 매우 중요한 화두였고,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마음이 곧 이치`라는 명제를 내세운 양명학도 명대에 등장해 마음 수양 연구의 흐름을 이어 나갔다. 또 사서삼경의 하나로 유교사상의 입문서인 대학(大學)에서도 자기 수양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이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수양의 길을 걷고 있는 부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만일 자녀문제로 수양의 길을 걷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자녀 문제의 완벽한 해결사나 슈퍼맨이 아닌 이유로 자책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아이들 앞에서 `인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능한 부모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