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획취재
경주 동리목월문학관 관광활성화 어떻게 할까

▲ 빅토르 위고 박물관이 위치한 프랑스 파리 보주광장 전경.
▲ 빅토르 위고 박물관이 위치한 프랑스 파리 보주광장 전경.

프랑스 파리 4구 보주광장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빅토르 위고 박물관은 프랑스 최초의 문학관으로 1902년 개관했다. 문학을 책 밖으로 끌어내 다른 문화와 합치려는 다각적인 노력 덕분에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라드 오디네 위고 박물관장을 지난 3월 27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 했다. 113년의 역사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여준 비결과 관광 마케팅 방안, 그리고 관광객 유치를 위한 중점 전략 등을 들어봤다.

■ 글 싣는 순서

① 영국 셰익스피어 생가 세계적 관광명소 비결
② 프랑스 파리 3대 문인(文人)박물관 성공사례
③ 프랑스 파리 빅토르위고박물관의 성공 비결
④ 국내 문학관 벤치마킹- 황순원·김유정문학촌
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대담
⑥ 이문열 작가 대담
⑦ 동리목월문학관의 나아갈 방향 제언

1902년 프랑스 최초 개인문학관 출발
작가 유·무형 창작물 단순 보존 넘어
지역민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확대

지역민 관람객 확보에 가장 신경
육필원고 디지털화 서비스 진행


■ 제라드 오디네 관장 인터뷰

-빅토르 위고 박물관이 파리시나 프랑스의 관광객 유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데.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19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시인이며 소설가·극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며 19세기를 살아온 긴 세월 동안 수천 편의 시를 쓰고 모든 장르의 작품들을 발표한 위대한 시인, 위대한 극작가, 위대한 소설가, 위대한 사상가였고 또한 위대한 투쟁가이기도 했다. 한때 그의 목소리는 프랑스 민주주의 양심이며 국민정서를 대변하는 희망의 목소리였으며 그의 박애주의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사상은 19세기 후반에 전 유럽 사회에 빛을 던져줬다.

이처럼 빅토르 위고 박물관은 프랑스의 대문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경외심이 반영됐으며 또한 이를 통해 주민들을 정서적으로 통합할 수 있고 주민생활과 관련해 그 활용가능성을 넓히려 노력해 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많은 세계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아 감동을 받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 제라드 오디네 빅토르 위고 박물관장
▲ 제라드 오디네 빅토르 위고 박물관장

-프랑스 문학관은 사회당이 집권했던 1981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내·외적 환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문학의 대중화`라는 학문적 관심에 의해 운영되던 것이 최근 들어 문학관은 단순한 문학 관련 시설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공간`으로 확장돼 운영되고 있다. 위고 박물관의 설립배경과 발전과정에 대해 알고 싶다.

△프랑스에서는 문학관을 `Maison d`ecrivain(작가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빅토르 위고 박물관의 이름도 Maison de Victor Hugo다. 작가의 집은 역사적 건물이나 박물관일 수도 있고 도서관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일 수도 있고 그 중 아무것에도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문학관이라는 문화시설을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즉 문학관은 전통적으로 작가의 출생지이거나 오랜 시간 머물면서 창작과 자취들을 유·무형으로 보존하는 곳이었으나 최근 들어 특정 작가의 공간이 아닌 지역민에게 문학을 소비하는 종합시설이자 신진작가들의 창작 공간 역시 문학관의 형태로 운영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빅토르 위고 박물관은 1902년 탄생 100주년이던 해에 위고의 유언 집행인이자 충실한 추종자인 폴 뫼리스가 자신의 전 컬렉션을 파리시에 기증하면서 1903년에 개관했다.

첫째로 위고 박물관은 한 인물에게 바쳐진 최초의 기념물이며, 한 작가에게 바쳐진 최초의 문학박물관으로 문을 연다. 위고는 작가, 정치인, 데생화가에 장식가이면서 또한 인권수호자였다. 1927년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나는데 위고 가족의 기증으로 노르망디의 영국령 섬인 게르네제섬의 오트빌 하우스도 파리시립박물관이 된다. 특히 오트빌 하우스는 작가가 손수 장식한 집이어서 아주 특별하다. 게르네제섬 관광객의 30%는 오트빌 하우스 때문에 이 섬을 방문한다.

파리의 위고 박물관은 1830~1848년까지 위고가 16년간 살았던 곳이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다른 작가의 집과 달리 위고 박물관은 작가의 가구나 육필원고 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물의 편지, 700여 점에 달하는 데생, 옛날 사진 자료, 가족의 초상이나 흉상, 작품의 삽화, 당시의 신문, 옷가지에 심지어 개 목걸이까지 있다. 다른 작가의 집에 비해 회화, 조각, 판화, 삽화 등 다양한 자료가 정말 풍부하다. 방대하고 귀중한 컬렉션을 소장함으로써 작가의 집 이상의 종합박물관이다. 작품 원고는 주로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하지만 가족과 주변 인물, 특히 그의 연인 쥘리에트의 편지가 많이 보관돼 있다.

1983년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온다. 처음 개관했을 때는 박물관의 전시가 체계적이지 못했다. 서거 100주년을 맞아 3층을 작가가 살던 아파트 분위기가 나게 개조한다. 물론 재구성한 것이다. 생애를 망명 가기 전, 망명기, 망명에서 돌아온 뒤의 세 시기로 나눠 아파트를 꾸민다. 1년에 두 차례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는 늘 빅토르 위고와 연관된 주제로 기획된다. 특히 종이로 된 자료는 상설전시 할 수 없으므로 전시회 때마다 순번제로 돌아가며 내놓는다.

- 직원은 몇명인가.

△전체 직원은 31명이다. 그 가운데 세 명의 연구원은 과학적으로 자료를 보관하는 일을 맡고 있다. 두 명의 연구원은 육필원고를 담당한다. 그 이외에 행정담당, 홍보관, 도서관 사서, 총무, 안전요원, 안내원, 감시요원으로 구성된다.

- 박물관 홍보 매체는.

△인터넷 홈페이지는 프랑스어와 영어 사이트를 운영한다. 안내요원과 감시요원들의 외국어 구사능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특히 안내요원 중에는 6,7개국 외국어를 구사하는 직원도 있다. 또한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한다. 6개국어로 서비스하는데 파리시립박물관 가운데 유일하다. 다른 시립박물관들의 오디오 가이드는 보통 3개 국어이다.

-재정 확보는 어떻게 하나.

△현재 파리시립박물관들은 입장료가 무료인데 전임 파리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절 사회복지 차원에서 무료화 했다. 파리시가 100% 재정 지원을 했으나 2013년부터 시립박물관들이 법적 지위가 공공기관으로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자체 재정확보라는 점이다. 파리시가 70%를 지원하고 30%는 자체 충당이다. 특별전시회의 매표수입, 기업의 메세나 기부, 기념품 판매 등을 통해 재정을 확보한다.

 

- 위고 박물관은 파리시의 문화정책을 충실히 반영하나.

△프랑스의 많은 문학관은 민영단체인 협회나 동호회가 운영한다. 문학관이 박물관으로 바뀌면 문화부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작가의 집이 문화나 관광 차원의 가치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와 협력관계를 가진다. 규모가 작은 지방의 사립 작가의 집들은 박물관이 아니지만, 위고 박물관은 처음부터 공립박물관으로 출발했다.

민영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중에서 그런대로 민과 관의 협력체제로 잘 운영되는 것은 파리에 있는 유태인박물관이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다. 대부분의 작가의 집은 민관 협력체제로 운영된다.

파리시립박물관들은 파리 시장이 우파든 좌파든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들 박물관들은 어느 정도 운영에 자율권이 있다. 이 점에서는 의견 일치를 보는 분위기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들어오면서 시립박물관 운영이 전문화된다. 소장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다양한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며 새 자료들을 구입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부유층이나 유한계층 말고도 소외계층이나 젊은 관람객을 많이 끌어 들이려고 애쓴다. 위고는 특히 흰수염이 텁수룩한 늙은 작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젊은이들한테 호기심을 끌만한 요소를 많이 고려하고 있다.

-파리시가 박물관 일에 관여하는가.

△시립박물관들은 자율권이 많이 보장된 대신 간접적으로 규제를 받는다. 철저히 법제화 돼 있다. 예컨데 모든 박물관은 향후 5년에 대한 보관 차원이나 문화 차원의 과학적이며 문화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위고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크게 곤란한 일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재정적인 면에서는 큰 문제는 없었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관람객이 많이 오게 하는 것이다. 박물관 정책에서 상부기관의 입김을 별로 받지 않는다. 지방의 작은 박물관의 경우 단체장이 누구냐, 좌파냐, 우파냐, 그 사람의 개인 성향에 따라 막대한 영향을 받는데, 파리쪽 박물관은 대개 생긴 지 100년 이상 되기 때문에 제도화가 잘 돼 있다.

-초미의 관심사는.

△4년간 관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신경 쓴 점은 지역주민들을 많이 오게 하는 것이었다. 지역 관람객들은 상설전시를 다시 보겠다고 잘 오지 않으므로 기획전을 통해 규칙적으로 계속 오게 하려고 애쓴다. 외국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의 비율을 비교하면 외국 관광객은 안정적인 숫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비율상으로는 60%에서 55%로 내려갔다. 그만큼 지역 주민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말이다.

-위고 박물관 홍보는 어떻게 하나.

△박물관 정보가 페이스북, 트위터, 인터넷 사이트에 많이 올라와 있다. 오디오 가이드도 홍보매체가 된다. 외국 관광객들은 꾸준히 위고 박물관을 찾는 편이다. 지역주민이나 지방 관람객들은 기획전을 보러 많이 온다. 특히 노작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곧 하게 되는 공사가 있다던데.

△3월 29일부터 한 달에 걸쳐 문 닫게 된다. 다음 특별전시회가 있는 4월 29일에 맞춰 다시 문을 열게 된다. 먼저 장애인들이 더 쉽게 전시물에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을 보강하려고 한다. 그리고 전시작품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실의 조명 장치를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한 공사다. 또한 3층 아파트를 수리할 텐데 한 방은 벽지를 갈고 전시품을 좀 바꾸게 될 것이다. 결국 좀 더 많은 소장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도서관 운영은.

△일반인들 누구라도 약속을 해서 오면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 육필원고 자료는 연구자들한테만 개방한다. 위고나 쥘리에트의 편지들이 많다. 현재 이런 자료들을 디지털화해서 서울에서도 검색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도 하고 있다. 작품원고와 대부분의 데생은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위고의 집에 따로 연구소는 없고 파리7대학에 위고연구 그룹이 있어 연구서를 규칙적으로 발간한다.

▲ 제라드 오디네 빅토르 위고 박물관장이 위고의 연인 쥘리에트가 위고에게 보낸 편지 2만여 통을 보여주고 있다.
▲ 제라드 오디네 빅토르 위고 박물관장이 위고의 연인 쥘리에트가 위고에게 보낸 편지 2만여 통을 보여주고 있다.
-교육활동과 문화활동은.

△네 명의 연구원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초등학교 그룹에 둘, 중·고와 일반인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박물관과 연계된 학교의 학생들이 단체로 `박물관의 친구 교실` 프로그램으로 박물관에 규칙적으로 온다. 성인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으로는 위고박물관에 강당이 없어서 가장 큰 방인 붉은 방에 의자를 갖다 두고 낭독회나 대담 프로그램 같은 모임을 갖는다.

2017년부터 실험적인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레 미제라블`, `웃는 사람`등 한 편의 작품을 가지고 특별전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죄수들을 위한 전시회를 기획해 교도소에 개최할 계획인데 이 경우 교도소 수감자들이 주최자가 된다.

-위고의 문화적 자산가치는.

△위고는 젊은 시절부터 줄곧 사형제 폐지에 앞장선 인물이다. 세계 최초로 사형제를 폐지한 11월 30일에 39개국에서 행사를 할 때 파리에서는 위고박물관을 특별 조명한다. 국회에서 이틀에 한 번씩 위고의 말이 인용된다. `레미제라블`이란 전시회가 있었는데 부제가`잘 모르는 레미제라블`이었다. `레미제라블`은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이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면이 늘 있다. 그래서 위고는 동시에 아주 많이 알려진 작가임과 동시에 잘 모르는 작가다. 어쨌든 위고는 작가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최근의 `웃는 사람` 전시회에서는 전시회 포스터는 거의 팔리지 않았는데 대신 관람객들은 전시회에서 나오면서 작품만 사갔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아주 다양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은 억지로 오는 경향이 있지만 초등학생들은 반응이 아주 좋다. 요즘에 아이들이 옛날식으로 장식된 집을 볼 수 없기에 위고 박물관에 와서 고풍스럽게 장식된 아파트를 보고 신기해하며 특히 중국식 살롱을 보고 아주 놀라워한다. 아파트 장식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지만 일반 관객들은 아파트를 방문하면서 작가의 혼을 느끼는 것 같다.

-한국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데 대신 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영화관을 간다. 첫번째 본 영화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었다. 두어 번 가본 한국식당이 있다.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많다. 늘 한국에서 위고 관련 전시회를 꿈꾸고 있다.

※본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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