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만어석의 경종

▲ 만어사의 미륵전과 돌너덜.
▲ 만어사의 미륵전과 돌너덜.
염불 소리가 봄 햇살을 업고 마중을 나온다. 대웅전 법당문은 활짝 열려 있고 한 켤레의 신발만이 기도 중인 뜰에는 햇살이 눈 부시다. 문턱을 넘어 나오는 예불 소리에서도 봄 향기가 묻어나고, 작은 법당에서는 탁 트인 경관이 들어와 함께 기도중이다. 만어사는 46년 수로왕이 창건하여, 신라 시대에는 왕들이 불공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던 사찰이다.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부탁하였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 터라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자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머물러 쉰 곳이 이 절이었다. 그 뒤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하였고 고기들은 크고 작은 화석으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대웅전에서 조금 벗어나면 왕자가 변했다는 미륵돌을 모셔 놓은 미륵전이 있다. 높이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은 전각 안에 다 들어서질 못하고 엉덩이 부분이 빠져나와 있다. 아들을 얻지 못하는 여인이 기원을 하면 득남을 하고, 위급한 일이 생기면 땀을 흘린다는 바위다. 사람의 눈에 따라 사리를 입은 부처님의 모습이 보인다는 신비로운 돌이다.

미륵전 아래에는 너비 100m 길이 500m에 이르는 거대한 암괴류(巖塊流)가 이색적인 풍광을 자랑하는데, `삼국유사`에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화하여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이 되었다”고 전한다. 약 3만 년 전 빙하기에 주변부의 깊은 땅속에서 심층풍화를 거친 화강암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미끄러져 내려와 형성된 것이다. 우리말로 너덜, 너덜겅 혹은 돌너덜이라고 하는데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물고기를 상징하는 절답게 대웅전 불상 대좌에도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물속에서도 두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는 항상 깨어 있으면서 재액을 방지해 준다는 의미를 가진 신물이다. 눈을 크게 뜨고 정진하라는 뜻의 목탁이나 빈 몸속을 두드림으로써 비움의 미학을 전하는 목어, 추녀 끝에서 바람의 노래를 전하는 풍경도 물고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거대한 물고기 떼, 만어사 돌너덜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무엇일까?

왕자를 따라왔던 물고기들이 변했다는 만어석(萬魚石)은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거센 파도에 휩쓸려 산을 오르내리듯 모양도 자연스럽고 경이롭다.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가 나서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누군가 옮겨놓은 듯한 돌무리도 장관이지만 다양한 소리가 신비롭다. 무심코 작은 돌멩이로 바위를 두드려 보니 맑은 종소리가 나는가 하면 목탁 치는 소리도 난다. 세종 때는 이곳의 돌을 이용하여 편경이라는 악기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던 어린 시절엔 큰 바위나 나무, 자연이 좋은 놀이터이며 친구였다. 새록새록 몰려드는 추억 때문인지 돌너덜이 포근하고 정감이 간다. 모처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돌너덜을 밟고 아슬아슬하게 걷기도 하고, 봄빛 가득한 돌 위에 앉아 사진도 찍는다. 나찰녀의 아가리처럼 컴컴한 바위틈 구멍에 얼굴을 박고 우우 소리를 질러보고도 싶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쪽으로 가보니 상처투성이가 된 바위들이 흉물스럽다. 낙서처럼 새겨진 이름들과 소리를 듣기 위해 두드린 흔적들을 온몸에 두른 바위들이 고통을 호소한다. 평범하지 않아서 받은 조명은 영광보다 시련이 컸다. 오랜 세월 맞고 맞은 멍 자국들이 하얀 얼룩이 되어 아픔을 토해낸다. 애절한 눈빛들이 몰지각했던 내 행동을 돌아보게 한다. 단순한 호기심이 빚어낸 결과 앞에서 영혼은 남루해진다.

일상에서 고요함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잠시 바위 위에 앉아 대웅전과 삼 층 석탑, 커다란 자연석에 조각된 부처님을 바라본다. 복을 바라고 화를 멀리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민간신앙의 흔적인 삼성각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 이 모든 것이 중생들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화신이라면, 돌너덜도 다를 바 없다.

미륵전에 모셔진 미륵돌과 산허리를 채우고 있는 돌너덜은 같은 형상과 전설을 가졌지만, 다른 운명으로 살아간다. 성스럽다는 것은 외부의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날마다 뜨는 태양, 풀 한 포기, 하나의 미물도 부처님의 화현일 수 있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존귀한 대상이다.

 

▲ 조낭희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내 존재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나를 부양할 수 없다. 오염되지 않고 집착 없이 사물을 대하는, 참 자아를 놓치지 않는 일상이 결국 기도하는 삶이다. 마음을 닦고 싶어 좋은 사찰을 찾아다녔다. 어색하던 기도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그런데 그 기도가 타성에 젖거나 일회성에 그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상처투성이가 된 만어사 돌너덜이 경종을 울린다.

밤이 오면 돌너덜은 아픈 몸으로 하늘과 소통할지 모른다. 왕자를 따라왔던 그 날처럼 산 아래 펼쳐진 운해를 향해 펄떡이며 나아가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만 마리 물고기가 고통 없는 세상을 향해 힘차게 뛰어 오르는, 장엄한 불법의 세계를 상상하며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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