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 공주가 사는 성

▲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태고의 신화처럼 좀체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을 밀고 들어선다. 마치 사십여 년은 기다렸다는 듯 기찻길에서 어른거리는 추억 하나. 아버지를 먼발치에서 보고 쓸쓸히 돌아서서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돌아서면 어떡하느냐고 쫓아오던 열이, 눈물이 나서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허랑허랑 꽃잎만 날리고 기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적을 울리며 달렸다. 내 열아홉의 봄을 싣고서.

달달한 것을 많이 먹어서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일행의 말에 내 추억이 화들짝 달아난다. 살아있다는 건 달콤한 브라우니를 먹다가 쓴 커피를 마시는 일. 차창 밖으로 주체 못 할 외로움이 겨울바람에 실린다. 레일 카페에선 지나간 상처도 아름다워진다.

군위군 산성면 화본 마실이다. 인구 250명에 불과한 오지, 화본 마실은 이제 전국 최우수 마실로 우뚝 섰다. 연 15만 명이 찾는 경북 지역의 주요 체험, 휴양 마실로 자리 잡았다. 1박 2일 촬영지로 입소문을 타서인지 관광객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사람들은 심리적 허기로 무엇이든 채우려 한다. 꾸역꾸역 먹다가 체하기도 하고 먹으면서 울기도 한다. 눈에라도 담고 입으로라도 채워야 구멍 난 가슴이 메워지는 것일까. 그래서 여행을 구매하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좋다고 하면 가봐야 하고, 맛있다고 하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사람들은 모방하면서 위안을 얻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건 아닐까. 나도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화본 역은 전국에서 얼마 남지 않은 간이역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교통수단이 되어 주었던 조그만 역. 아직 하루에 여섯 번은 열차가 다닌다고 하니 한번 타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이 역은 단선의 중앙선 철도이다. 경성에서 영천까지 연결하고 나중에 경주까지 이어서 경성의 `京`, 경주의 `慶`의 첫 글자를 따서 `경경선`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중앙선이라 부른다. 중앙선이 지나는 지역은 금, 동, 아연, 흑연, 석탄, 목재, 쌀 등이 풍부했다. 일본은 자국에서 공급해오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약탈한 물자를 만주까지 실어 나르기에 충분했다. 물자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사용되었다. 또 경경선의 이점은 함포 사격에 의한 파괴의 위험을 안고 있던 경부선에 비해 군사적으로도 매력적인 노선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경경선을 개설했다.

화본 역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대던 급수용 탑이 볼거리이다. 마치 동화 `라푼젤`에 나오는 성 같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본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밖에서 문을 잠근다. 어쩔 수 없이 동화 속 라푼젤이 되었다. 마법의 머리칼을 가진 라푼젤 공주를 납치해온 고델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공주를 성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라푼젤은 갓난아기 때부터 높은 탑 속에 갇혀 바깥세상을 모르고 살아간다. 왕과 왕비는 해마다 공주의 생일이 되면 그녀가 돌아오길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등불을 날린다. 그 등불은 라푼젤이 갇혀 사는 성에도 날라 온다. 라푼젤은 한 번만이라도 성을 나가 등불을 보는 것이 꿈이다. 우연하게도 그녀의 오랜 꿈을 실현해 줄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닳고 닳은 도둑, 유진이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악녀를 물리치고 꿈을 이룬다.

“창문을 통해서만 세상을 본 모든 날, 밖을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세월. 어떻게 이렇게 모르고 살았을까, 지금 난 여기에 있어. 분명히 내가 원하던 곳에 내가 있지. 마침내, 그 불빛을 보고 있어. 마치 안개가 걷힌 것 같아. 새로운 하늘이 열린 것 같아. 따뜻하고 밝아, 왠지 세상이 바뀌고 있어.” 동료가 창밖에서 오백 원 주면 문을 열어주겠다며 협상을 한다.

 

▲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기찻길.
▲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기찻길.

`내 청춘의 어느 날도 라푼젤처럼 갇힌 날들이 있었지. 그땐 세상 밖으로 도망칠 용기가 나지 않았어. 도망칠 용기보단 먹고살 자신이 없었다는 게 맞을 거야. 살다 보니 안개가 걷히는 날도 오더라구. 나를 가두기 위해 놓은 덫이 사람 살리는 길이 되기도 하더라구. 삶은 지나보니 별 게 아니었어. 그런데도 아등바등 사는 게 인생살이더군.`

화본역만 보고 가기엔 발길이 섭섭해서 폐교를 추억의 장소로 꾸민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를 보기로 했다. 난로 위에 놓인 양철 도시락이 과거의 추억 하나 끌어올린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까먹고 딸그랑거리며 흔들어 대던 몇몇 남자아이들. 복도에 꿇어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선생님들이 너나없이 출석부로 머리를 한 대씩 때리고 갔다. 그래도 즐겁다고 깔깔거리던 그 아이들도 이젠 선생님과 같이 늙어가고 있다.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는 선생님이 이젠 오빠 같다.

급훈이 `옆 반 정복`이다. 일행 모두 배를 잡고 웃는다. 남을 이기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 아닐까. 우리 어렸을 적에도 선생님들은 옆 반에 지지 않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기성회비 빨리 안낸다고 학생들 따귀도 서슴없이 올려붙였다. 원망 어린 눈으로 선생님을 흘겨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지금쯤 큰 부자가 되어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살고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월급을 기성회비 못내는 아이들에게 대신 내준 선생님도 있었다. 그런 선생님은 왜 기억에서 더 빨리 잊혀지는지.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니의 긴 이야기를 듣자//

미워도 다시 한 번, 2014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