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음반제작자·예능인으로 맹활약 중인 윤종신

오랜만에 만난 윤종신은 명함 두 장을 내밀었다. 한 장에는 레이블 `월간 윤종신`의 대표, 또 다른 한 장에는 레이블 `미스틱89`의 대표 프로듀서란 직함이 적혀있었다.

그는 지난 2010년 3월부터 매월 신곡을 한 곡씩 발표하는 `월간 윤종신`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명의 법인을 만들어 자신의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또 미스틱89란 기획사의 수장으로 후배 가수들을 키우고 있다.

음악 활동 외에도 그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의 MC이자 엠넷 `슈퍼스타 K`의 심사위원으로 방송가를 누볐다. 2000년 시작한 예능인 경력도 벌써 15년이다.

그러니 연예계에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1인이다.

육체적으로 과부하 상태인지 최근 종로구 평창동 카페에서 만난 윤종신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양한 분야를 활보하면서도 그는 음악인, 음반제작자, 예능인으로서 각 영역의선을 넘지 않은 덕에 어느 한 쪽의 이미지도 훼손하지 않았다. 초창기엔 뮤지션이 예능에 치중한다는 비난도 들었지만 쉼 없이 창작의 결과물을 내고 음악 페스티벌까지 기획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흐리지 않았다.

◇ `월간 윤종신`, 융합하고 팽창하는 행성

`월간 윤종신`은 5년째 이어져 왔다. 오는 20일 발매될 12월호 `지친 하루`에는`슈퍼스타K 6`의 `톱 2`인 곽진언과 김필이 참여했다.

매월 한 곡씩 신곡을 내는 건 사실 미련 해보였다. 그가 고정 팬이 있는 뮤지션도 아니고 매월 내는 신곡의 희소성이 떨어져 파급력도 크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런데 우둔해 보이던 이 행보가 비로소 업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신해철은 생전 방송에서 “`월간 윤종신` 같은 방법을 7년 전에 계획한 적이 있는데 윤종신이 먼저 했다”고, 김장훈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 달에 한 곡 낸다는건 기적 같은 일이다. 윤종신은 위대한 뮤지션”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러한 평가를 받은 건 그가 자신과의 약속을 꾸준히 지켜나간 게 비결이었다.

우보천리(牛步千里)가 된 셈이다.

윤종신은 “미련한 방법이 미덕이었다”며 “사람들이 꾸준한 사람을 공부하고 탐구한다는 걸 느꼈다. 효율이 떨어져 보일 수 있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하니 그게 힘이 됐다. 5년간 임상 시험을 한 셈”이라고 웃었다.

그는 음원 생산에 머물지 않고 뉴미디어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마케팅도 시도했다. 2012년 10월 이규호와 발표한 `몰린`부터 가사 북클립 등을 담은 웹진 형태의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했다. 매월 신곡의 앱을 출시할 때마다 다운로드 수가 3만~5만 건에 달했고 앱이 쌓이니 `월간 윤종신`은 아카이빙(archiving:자료를 모아둔 파일이나 목록)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를 결합한 콘텐츠의 확장도 기획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출시에 맞춰 이 책을 미리 읽은 느낌을 노래로 옮기거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장면을 뮤직비디오에 삽입했다. `월간 윤종신` 커버를 디자인한 미술가들과 전시회도 여는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통해 문화기획자로서의 행보를 보였다.

그는 “월간 윤종신은 융합하고 분열하며 팽창하는 행성과 같다”고 강조했다.

“음악은 책, 게임, 미술 등 여러 분야와의 협업이 가능해 `월간 윤종신`은 이미 여러 문화를 품었죠. 제 꿈은 `월간 윤종신`이 미디어가 되는 겁니다. 보통 미디어는 비평을 통해 힘을 얻는데, 전 `이런 류의 음악과 작품은 어떤가`라고 창작자로서제안하는 미디어로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 미스틱89, 아이돌과 다른 생존법 고민

타인에 구애받지 않는 창작 활동을 하고자 `월간 윤종신`을 자비로 운영하는 레이블에서 출시한다면, 후배 가수를 육성하는 일은 외부 파트너와 손잡고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미스틱89에서 추진하고 있다.

미스틱89에는 박지윤, 김연우, 김예림, 에디킴 등 다수의 실력파 가수들이 소속돼 있다. 올해는 배우 한채아 등이 소속된 가족액터스, 가인과 조형우가 소속된 에이팝엔터테인먼트와 잇달아 합병해 사세를 확장했다. 지난 9월에는 대중음악 페스티벌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업계가 주목하는 기획사로 떠올랐지만 아직 해외에서 통하는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점은 숙제처럼 보인다. SM과 YG 등 대형 기획사가 아이돌을 키우는 시스템이 가요계 텍스트가 된 상황이니 `아이돌을 키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언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소위 지금의 킬러 콘텐츠는 아이돌인데, 200억 매출을 기록해도 수명을 보면 얼마나 불안한 형태인지 알 것”이라며 “아이돌은 누군가 뜨면 누군가 지는 `제로섬`(zero-sum) 시장인데 엔터테인먼트의 생존법이 과연 그것일까. 킬러 콘텐츠는 첫 단추부터 기획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꾸준히 하다 보면 생겨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로 인해 프로듀서 진용이 탄탄한 미스틱89는 이미 대형기획사가 선점한 아이돌과는 다른 생존법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젠 음악만 만드는데 그치면 안 돼 고민이 많다”는 솔직한 속내도 내비쳤다.

그는 궁극에는 발라드, 포크 등 다른 장르의 뮤지션이 아이돌 가수처럼 차트 1위를 찍지 않더라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섬처럼 꾸준히 음반을 내고 공연할 수 있는 `뮤지션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