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성탄절 그리고 겨울에는 역시 눈이 내려야 제격이다. 추운 겨울, 저 멀리 동유럽 체코 프라하의 겨울을 생각해 본다. 체코 프라하는 누구나 동경하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매년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이 2억명에 달한다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프라하는 유럽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중 하나다. 유럽의회는 프라하를 2000년 유럽의 문화 도시로 지정했다. 도시 전부가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아르누보 건축물로 들어차 있어 중세 건축물의 박물관이라는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프라하는 몇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도시지만, 건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수년도 부족할 만큼 아름답고 로맨틱한 도시다.

겨울이 오면 프라하를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프라하는 겨울의 도시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흰 눈 그리고 고독과 사랑, 프라하의 중세건물과 골목으로 보헤미안의 낭만이 번지면 세계도처 여행객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곳이 프라하다.

시장경제가 도입 된지 25년이 흐른 지금, 프라하의 겨울도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바로 카페문화다. 추운 겨울 프라하는 문인과 낭만의 여행객들이 유명한 카페들을 찾아 커피나 한 잔의 독한 술로 사색을 펼쳤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토록 유명했던 카페 `슬라비아`도 그 중의 하나다. 고급샴페인, 층층으로 쌓아올린 둥글고 화려한 케이크인 토르테, 남부 보헤미안산인 청어, 볼타바강에서 잡아 올린 가재…. `슬라비아`는 고급카페이자 고급레스토랑이었다. 시인이자 전 체코의 대통령이었던 하벨도 이곳에서 겨울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카페의 벽에는 1905년도에 그려진 `압생트酒를 마시는 사람`이라는 유명한 그림도 걸려 있었다.

압생트주는 알코올 도수가 75%에 달하는 독한 증류주다. 쑥이나 회향, 아니스 등 향미료가 첨가된 리쿠어酒도 판매된다. 알코올 도수가 75% 이상인 술은 너무 독하기 때문에 자칫 환각을 일으키거나 눈이 멀 수 있다고 하여 서유럽 대부분 국가의 술집에서는 법적으로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데, 프라하에서는 1991년부터 다시 허용됐다. 음주에 대한 부작용은 음주자 스스로 책임지라며 자유를 준 것이다. 1인당 맥주 소비량 최고를 자랑하는 나라답다. `술 마실 때 행복해`라는 체코의 민요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여행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사색의 공간이었던 유명한 카페들도 사라진지 오래다. 인근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의 자본들이 들어와 수입이 좋은 다른 업종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카페 `슬라비아`도 그렇게 사라졌다. 당연히 치러야할 대가인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 이 같은 현상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의 부류가 바로 체코 문인과 예술인들이다.

카페문화가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프라하의 변신도 시작됐다. 프라하의 신생기업들은 체코의 문인 `프란츠 카프카`를 시장에서 완전히 브랜드화 하고 있다. 커피 잔, 티셔츠에도 어김없이 카프카의 상표가 새겨진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동면하듯 카프카는 인간세상을 외면했던 체코의 위대한 문인이었다. 소시민적이고 왜소한 삶을 살았던 카프카는 낮에는 보험국 관료로 일했고 밤에는 한없이 작아지는 실존의 부조리를 소설로 남겼다.

프라하는 `황금의 도시`로 불려왔다. 체코의 필스너 맥주병이 황금색으로 빛나서일까. 아니면 프라하의 수많은 교회 지붕 첨탑이 황금색이여서일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현재 프라하의 서부 지역)의 왕이었던 루돌프 2세는 프라하를 포함해 유럽 전체가 황금으로 변하길 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프라하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프라하 성 밑 골목에는 16세기 연금술사와 금 세공사가 살았다는 유명한 `황금소로(Golden Lane)`가 있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에 팔기에 여념이 없지만 서유럽인들도 이처럼 사라져가는 프라하의 카페문화를 아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