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 김정설을 좇는 사람, 玄牛 정형진

▲ 정형진 선생은 바람·숨·목숨의 흐름, 즉 풍류를 올바로 이해하고 대동사회를 이뤄가는 것이 풍류정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국민 대부분은 한민족이 단군의 자손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아직도 이를 입증하는 명확한 연구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으려면 우선 고대사 연구가 선결되야 하는 과제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 어떤 학자도 명쾌한 정의를 내린 적도 없고,연구자들 간에 의견만 분분하다. 그리스의 경우 그리스 신화를 통해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단서`를, 이스라엘과 서아시아의 역사는 `성서`로 복원되고 있다.

중국도 중화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기위해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에 이어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진행하면서 뿌리를 찾고 있다.

이런 가운데 풍류정신(風流精神)을 통해 우리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연구하면서 대한민국 최고 사상가 범부(凡父) 김정설(金鼎卨)을 좇는 이가 있다. 그가 현우(玄牛) 정형진(56) 선생이다.

범부도 풍류정신 연원·내용 등 자세하게 안밝혀
한민족 초기 고대사 연구가 풍류도 이해에 핵심
단군왕검~삼한형성과정 연구 10여년 걸쳐 완성
풍류정신, 통일한국 넘어 세계정신으로 손색없어

-경주는 어떤 곳인가.

30살 되던 해에 경주에 내려 왔으니까 거의 27년 되었으며, 하고자 하는 공부를 할 공간으로 적합한 곳이 경주라 생각했다. 이곳 경주는 한국정신문화의 진정한 중심이다.

경주에서 풍류정신이 태동하였고, 그것이 화랑도가 되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원효스님이 무애행을 하면서 풍류정신의 핵심인 접화군생(接化群生)을 실천했다.

신라인 최치원이 동방의 정신에 주목했고, 조선조 말에는 최수운 선생에 의해서 다시금 풍류정신이 꽃피웠다. 그 풍류정신을 신생 대한민국의 정신으로 되살리고자 한 분이 경주가 낳은 천재 범부선생이다.

-학업 수행의 방향은.

우리 고유의 사상인 풍류도에 대한 좀 더 확실한 답을 얻고 싶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거창하게는 한민족 고유의 사상과 그 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의 맥(흐름)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사실 풍류도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조금만 들어가 보면 앞이 절벽이다. 연구논문을 살펴보면 그 절벽 앞에서 모두 멈추고 있다.

범부선생은 화랑정신에는 세 가지 요소, 그러니까 종교적 요소, 예술적 요소, 군사적 요소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연구를 통해서 그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군사적 요소와 예술적 요소다. 가장 문제가 되고 중요한 `종교적 요소`는 밝히기 어려워 아무도 해내지 못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류정신 연구에 애로사항은.

문제는 바로 고유한 풍류도가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 사상의 연원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범부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데에는 위대한 `풍류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범부 연구자인 정다운이 지적했듯이 (범부선생은)풍류정신의 내용이 어떠한 것이라고 그 어디에도 충분히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다. 범부는 자신의 글에서 그 답을 찾을 길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유 중 하나는 문헌자료의 부족이고, 둘은 풍류정신을 살려온 조상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공동체를 이끌었는가를 몰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초기 한민족을 구성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풍류도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민족 초기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풍류도를 이해하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 한민족 초기 형성사를 연구했다는 것인가.

어쩔 수 없었다. 그 작업이 이미 선행되어 있었다면 저도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민족 초기 형성사를 연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또한 문헌자료가 부족하다.

조상들이 남긴 종교유적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멀리는 만주와 중원 지역도 여러 번 답사를 했다. 조상들이 땅에 남기 글(地文)은 조상들의 종교와 문화를 추적하는 귀중한 단서가 되었다. 15년 정도 독서와 사색, 호흡수련을 하거나 유적지를 찾아다니고 나니 한민족 초기 공동체에 대한 실마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2003년, `부여족의 기원과 이동, 고깔모자를 쓴 단군`(백산자료원)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올해(2014) 5월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까지 5권을 발표했다.

이로써 제가 목표한 한민족 초기 공동체의 역사를 완성했다. 단군왕검시대부터 삼한이 형성되는 과정까지를 정리했다.

-연구결과 풍류도에 대한 답을 제시할 단서를 찾았나.

원하는 답은 어느 정도 찾았다고 확신한다. 한민족 초기 공동체를 구성했던 사람들이 유라시아 신석기 문명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이동하면서 가지고 온 정신문화가 바로 풍류도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제가 최근에 발표한 책 제목이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 인데, 책 제목을 그렇게 부친 이유는 기원전 24세기경 요서지역에서 출발한 단군왕검사회인들이 1차적으로 요동과 서북한 지역으로 이동했으며(기원전 13세기 말), 이들이 역사에서 진인이라고 불린 사람들이며, 그 흐름의 마지막 종착지가 진한 사로국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 진한 사로국의 초대 왕으로 추대된 분이 바로 박혁거세다. 그가 단군왕검의 제정일치적 종교문화를 계승하고 있고, 그의 아들 남해왕을 차차웅이라고 불렀으며, 통일신라 초기의 대학자 김대문은 차차웅은 무당이라고 해석한 것이 그 증거다. 풍류도는 바로 박혁거세 집단이 계승해온 정신이었던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남해 유리왕이 시조묘를 세우고 누이 아노(阿)가 제사를 맡은 것이 화랑의 기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절반은 맞는 셈이다. 특히, 범부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풍류정신의 연원을 고조선 시대의 신도(神道)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 신도가 정확히 동북아시아 종교사에서 어떤 것인지 규명할 수 없었다. 단지 무(巫)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만 추측했고,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군왕검사회의 주(主) 종교가 어떤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군왕검사회부터 계승되어 온 종교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그 사회를 주도한 세력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풍류정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풍류정신의 핵심은 `홍익인간`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인데, 최치원이 쓴 난랑비의 서문에서 `(풍류도인은)모든 민중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하였다(接化群生).`고 한 것은 바로 `홍익인간`의 다른 표현이다. 지금도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하는 논쟁도 국민을 두루 살펴 널리 잘 살게 하는 것이 바로 홍익인간하는 것이고, 접화군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멋진 큰 삶`을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풍류정신이 앞으로 `통일시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나.

풍류정신은 통일한국 뿐만 아니라 21세기 세계정신으로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 풍류정신은 이성적 판단에 따른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실상에 대한 지극한 깨달음이 있은 후에 실천할 수 있는 정신이고, 수운 최제우가 그랬다. 범부는 `화랑외사` 서에서 “`얼`의 앉을 자리만 닦아지면 아무 것이나 다 이룰 수 있는 `법`”이라고 했다.

풍류정신의 핵심은 생명[=바람=숨=목숨]의 흐름, 즉 풍류(風流)를 올바로 이해하고 함께 대동사회를 이루어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21세기가 아니라 그 이후에도 영원히 진리일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가장 부족한 `공적정신`의 회복도 풍류정신의 회복으로 가능하다. 물론 풍류정신이 통일시대의 정신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풍류정신에 대한 연구와 그 결과물을 대중들과 함께 나누는 선행 작업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풍류정신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주체사상에 물들어 있는 북한 주민들도 한민족의 진정한 주체사상인 풍류정신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고구려에도 화랑도와 맥을 같이 하던 조의선인제도가 있다.

▲ 정형진 선생은 바람·숨·목숨의 흐름, 즉 풍류를 올바로 이해하고 대동사회를 이뤄가는 것이 풍류정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현우 정형진은

1958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1985년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경주에 머물면서 한국 고대사와 고대 종교문화를 연구. 장기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주도한 지배 종족에 관한 연구서를 출간했다. 저서로 한민족의 주요 구성 종족인 부여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연구서인`고깔모자를 쓴 단군`(백산자료원, 2003년), 신라 김씨 왕족의 뿌리를 밝힌`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일빛, 2005년),한민족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환웅족의 유라시아 이동사인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일빛, 2006년) 등이다. 논문으로는`시경 한혁편의 한후와 한씨조선에 관한 새로운 견해`(단군학연구 13호)가 있다.

/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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