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편집국장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 김자옥이 죽었대요. 얼마 전까지 드라마에 나와 왕성하게 활동을 했는 데, 이럴 수도 있네요.” 공주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배우 김자옥이 63세의 나이로 갑자기 숨졌다는 소식에 유달리 김자옥을 좋아했던 아내가 무척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무척 좋아했던 배우여서 더 많은 애착이 갔는 데, 사람 사는 게 허망하네요. 하루하루 좀더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와 가까운, 또는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인생의 허무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마 죽고나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일게다. 오래 살고싶은 욕망에는 인연 맺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집착도 한몫한다. 그래서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또는 손주 볼 때까지 살면 좋겠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싫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고대 인도의 왕 아쇼카 형제의 이야기다. 아쇼카에게는 세속적인 쾌락에 빠져 사는 비타쇼카라는 동생이 있었다. 불교도가 된 아쇼카는 동생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아쇼카는 왕이 입는 옷과 휘장을 방에 벗어놓은 채 외출했다. 때마침 비타쇼카가 대신들과 함께 왕궁안을 거닐다가 왕의 옷과 휘장이 놓인 방에 이르렀다. 대신 중 하나가 말했다. “이 옷을 한번 입어보세요. 당신의 형이 갑자기 죽으면 동생인 당신이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사양하던 그는 거듭된 권유에 넘어가 왕의 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았다. 그순간 아쇼카 왕이 돌아왔다.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것은 반역이니 이 자를 체포해 사형에 처하라.”고 소리쳤다. 자비를 청하는 동생의 애원에 아쇼카는 말했다. “네가 내 동생이니 특별배려를 해 주겠다. 네가 왕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니 앞으로 7일 동안 왕의 모든 권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 모든 여자를 가질 수 있고, 원하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내가 즐기는 모든 것을 너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7일 후에 너는 반드시 처형당할 것이다. 그것만은 달라질 수 없다.”7일 후 아쇼카는 사형장으로 동생을 불러놓고 물었다. “너는 아름다운 여자들과 최고의 음식을 즐겼는가? ” 비타쇼카는 말했다. “전 잠조차 하루도 잘 수 없었습니다. 내가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어떻게 그런 것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아쇼카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네가 깨달았구나. 7일 후든, 7달 후든, 7년 후든, 아니면 70년 후든 네가 반드시 죽는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감각적 즐거움만을 누릴 수 있겠느냐?”

법륜 스님은 `인생수업`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일어나고 사라진다. 그런데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이 출렁거릴 뿐이다. 바다 전체를 보듯 인생을 관조하면 삶도 죽음도 없다. 이 세상에서 생성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걸 깨우쳐 집착을 놓아버리면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괴로워할 일도 없다. 늙음도 죽음도 단지 변화일 뿐이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죽음이 두렵다면 종교를 믿으면 된다. 불교에서는 사후세계와 극락이 있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한다. 내세의 유무에 대해 논쟁할 필요는 없다. 증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내세가 있다고 믿는 것이 모두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사람 사는 동안 내내 화두다. 중국의 장자(莊子)는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가 깬 뒤에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했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것인가, 나비가 살고 있는 것인가. 답 아는 사람 있음 연락좀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