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을 가다
경주시 황남동 마실

▲ 천마도 장니
▲ 천마도 장니

한기가 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겨울옷을 준비하지 못한 게 탈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휩싼다. 기침이 연신 터져 나와 땅 신에게 절을 한다. 단풍든 나무는 여전히 곱다. 가을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운지 여행자들은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도 카메라에 추억을 담느라 바쁘다.

대릉원 입구에서 미추왕릉을 묻자 안내원은 대뜸 김 씨인 지를 묻는다. “아니, 어떻게 아세예. 김가인가를.” `경주에 점쟁이들이 많다고 하더니 이 사람도 혹시….` “미추왕이 경주 김 씨 조상이라고 카던가….” 안내원은 미추왕릉만 찾으면 모두 경주 김 씨로 보이는가 보다. “전 신라에 멸망한 고령가야 후손 함창 김간데예.”

미추왕릉은 대나무가 병사로 변하여 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서고국이 금성을 공격했다. 교전을 벌였으나 물리치지 못했는데 홀연히 나타난 귀에 댓잎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더니 적을 물리쳤다. 사라진 그들을 찾던 중 죽장릉에 죽엽이 쌓여 있음을 보고 아군을 도운 것이 대나무였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미추왕릉을 죽장릉이라고도 부른다. 몇몇 가족이 능 위에서 미끄럼 탄다. 마침 지나가던 관리인이 보고 내려오라고 손짓한다.

대릉원은 신라의 왕권 강화가 이루어졌던 4세기에서 5세기 초까지의 무덤이라고 추증한다. 2천 년 대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분군의 규모로는 가장 크다. 그중에서도 내부가 공개된 천마총과 대릉원이라는 이름을 짓게 한 미추왕릉, 경주에 있는 고분 중 가장 큰 황남대총이 있다. 대릉원은 삼국사기에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라는 기록이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 틈에서 귀동냥이라도 하려고 얼른 줄을 섰다. “여러분, 선생님 말 잘 들리나. 어이, 거기, 여길 잘 들따봐라. 하얀 천마가 보일 끼다. 거기 뒤에 있는 학생들 안 보이제? 한 줄만 요 앞으로 나온나.” 고개를 기웃거리며 발돋움해보지만 워낙 많은 학생 틈바구니에서 보일 리 없다. 귀만 곧추세운다.

“여기 보이는 기 천마도장니라고 하는 기다. 천마총에서 출토한 것 가운데 세상을 가장 놀라게 한 게 이거다. 니, 혹시 공부하면서 장니라고 들어본 적 있나? 야야, 왜 뒤를 돌아보노? 니보 고 하는 말이다. 승혀니 니.”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키득 키득 웃는다. “자, 자 조용히 하고, 우선 장니가 뭔지 들어봐라. `장니`는 말 탄 사람에게 흙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려 놓은 가리개라고 보만 된다. 흙이나 먼지를 막는 외에 장식물로도 사용되었다.

가만히 들따보만 하얀빛이 돌 끼다. 바로 저게 자작나무 껍질인데 여러 겹으로 겹쳐서 누빈 위에 천마를 그린 기다.” 그래서 백화수피제 말다래라고도 하는가 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 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알겄나? 이 고분의 명칭을 천마총이라고 한 것도 이 능의 주인이 누군진 모르지만 여기서 이게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붙인 기다.”

천마는 왕을 태우고 금방이라도 날개를 활짝 펼칠 것 같다. 혀를 내민 듯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신의 기운을 보여준다고 한다. 흰색의 천마는 동물의 신으로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대릉원 안에서도 `총`과 `능`으로 구분된 무덤을 보며 무덤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궁금해진다. `묘`와 `능`은 알고 있지만 `총`은 딱히 구분하지 않았었다. `능`은 왕의 무덤이고, `묘`는 왕이 아닌 사람의 무덤, `총`은 왕릉급이지만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 않은 무덤을 부를 때 쓴다고 하니 잘 알고 써야 무지함이 드러나지 않을 것 같다. 거대한 `천마총`의 주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흔히 왕릉을 발굴할 때 미스터리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걸 볼 수 있다. 파라오의 저주가 떠오른다.“파라오의 잠을 깨우는 자, 죽음의 저주가 있으리라” 영화를 보면 발굴에 참여하거나 후원했던 사람들 다수가 의문사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후세 사람들이 우연한 일치를 확대하여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국의 카나본 경은 파라오의 발굴을 후원한 사람인데 이집트의 한 호텔에서 모기에 얼굴을 물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왼쪽 뺨에 물린 모기 자국과 투탕카멘 왕 미라의 왼쪽 뺨에 벌레 물린 자국이 일치했다고 한다.

▲ 김근혜<br /><br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천마총에도 발굴 당시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전국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자 민심이 흉흉해졌다. 가뭄이 계속되자 경주 사람들은 왕릉(천마총)을 발굴해서 하늘이 노해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천마총을 발굴하면서 순금의 황금보관을 발견하고 담은 상자를 무덤 밖으로 옮기기 위해 한발 짝 떼는 순간 서쪽 하늘에서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암흑천지로 변하면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어둑해진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지막한 담 밑에 들꽃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들꽃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몸을 낮춰야 볼 수 있다. 담 너머로 개 짖는 소리,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느껴보던 마실 풍경이다. 벽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의 집에서 커피 향이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