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과 양극화 해소
사회적 경제에 길을 묻는다

▲ `슈베비시 할 협동조합` 설립 이사장의 아들인 크리스티안 뷜러 이사가 `쉐비시` 돼지의 방목장을 소개하고 있다.

독일은 영국과 함께 협동조합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다. 1860년 농업 종사자의 극심한 빈곤과 고리대금의 착취를 보다 못한 독일 협동조합의 창시자 프리드리히 라이파이젠은 농민 간 자본 연합을 통해 신협 운동의 효시가 됐다. 이런 뿌리 깊은 조합의 역사를 저력으로 독일 농업은 전체 GDP의 0.8%에 불과한 매출 규모에도 불구하고 생산에서 가공, 판매, 농촌체험까지 한국 농촌의 키워드로 떠오른 6차 산업 모델의 현장이 되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 생산자 조합은 물론 상인협동조합에서 글로벌 유통자본에 맞서는 대형 수퍼마켓으로 성장한 기업의 현장을 취재했다.

■ 글 싣는 순서

① 사회적 경제, 불신과 과신의 극복에서
② 제2·제3의 해피브릿지를 꿈꾼다(국내)
③ 조합이 일궈낸 6차산업의 천국(독일)
④ 소방서에서 탄생한 노숙인 셰프(영국)
⑤ 사회적 경제를 지역의 기회로

토종 10여마리 남은 최악 상황서
농민 7명 `슈베비시 할 조합` 설립
지난해 1천400억 매출 성과
6차산업체제 모델 자리잡아

조합 모태로 한 유통점 `레베그룹`
직원 수십만명 거대공룡 부상

□6차산업의 모델 `슈베비시 할 조합`

`독일의 대표적 항공사인 루프트 한자 여객기의 일등석과 BMW공장의 구내식당에 납품, 일반 제품보다 30%이상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돼지고기.`

독일 바덴-뷔텐베르크 주 슈베비시 할(Schwabisch Hall) 지역의 볼페어트 하우젠 마을을 방문하면 이러한 수식어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슈베비시 할 생산자협동조합이 생산하는 쉐비시 종(種) 돼지고기는 주민 1천200여명에 불과한 프랑크푸르트 서남쪽 200km 거리의 한 마을에 6차 산업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마을도 원래는 돼지를 키우는 가난한 농촌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도축에서 소비자 판매까지 통상 7단계의 유통과정의 최하위에서 농민의 수익은 마찬가지 수준에 불과했다. 성장촉진체를 투여하는 미국식 양돈 방식으로 인해 최단기간 도축과 저가 판매 위주의 대기업 시스템은 이 지역의 토종 쉐비시 돼지를 불과 10여마리만 남게 했다. 이 조합의 현 이사장인 루돌프 뷜러(62)는 이러한 현실에서 타개책을 모색하던 중 1982년 지역신문에서 `쉐비시의 품질 저하, 토종돼지 멸종 위기`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결국 1986년 의기투합한 농민 7명과 `양질의 돼지고기 생산`을 목표로 조합을 설립했다.

노력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드러운 맛에 사육 두수도 늘어나면서 돼지고기를 더 선호하는 독일 시장에서 고급육의 대명사가 됐다. 80년대의 경기호황과 웰빙 바람에 힘 입어 현재 조합원 1천400여명에 전국 350곳에 판매처가 있다. 지난해 1억2천만유로(1천400억원)의 매출 가운데 운영비 50만 유로를 남기고 모든 수익을 조합원에게 배당한다. 사육과 도축, 육가공품 제조, 직판장과 가족 레스토랑 등 6차 산업 체제를 갖춰 고용 인원이 400여명일 만큼 일자리도 창출하고 있다.

조합장의 아들이자 이사인 크리스티안 뷜러(34)는 “슈베비시 할 조합의 궁극적 목표는 돈이 아니라 농민들의 연대로 올바른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정당하게 소득을 분배하는 것”이라며 “인도와 세르비아 등 후발국가들에게 조합 운영을 전수하고 공정무역도 하는 등 사회적 책무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급속히 점포 수를 늘여가고 있는 레베 그룹의 슈퍼마켓 입구.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급속히 점포 수를 늘여가고 있는 레베 그룹의 슈퍼마켓 입구.
□독일 토종 유통점 `레베 그룹`

사회가 안정적인 독일에도 소매유통업계는 카르푸와 테스코 등 글로벌 거대유통자본의 위력이 상권을 잠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27년 쾰른의 소매상들이 공동구매를 위해 설립한 협동조합이 모태가 된 레베(REWE) 그룹은 독일 슈퍼마켓 업계의 거대 공룡으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한 점포의 안드레아스 레츠라프 점장는 “독일의 대표적 유통 브랜드인 `텡헬만`을 인수하는 등 확장을 거듭해 이제 다른 대기업의 점포를 거의 장악했다”면서 “주식회사와 다름 없는 공격적 경영으로 이제 글로벌 유통점은 독일에서는 그 세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이 도시의 본점 3km 반경 안에 30곳의 크고 작은 레베 슈퍼가 들어섰다. 2006년부터 친환경 코너인 `랜드 마켓(land market)`을 설치해 지역농민의 유기농 생산품도 판매하는 등 발빠른 마케팅을 거듭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건강한 조합이란 이미지로 인해 판매도 늘고 지역 소상인들의 가입도 늘고 있다.

이 같은 성장세의 결과, 유럽 13개국 1만5천여곳에 진출해 직원 33만명을 고용하고 지난해말 506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독일에는 매장 3천300여곳에 직원이 22만5천여명이며 조합원은 이중 30%이다. 이 같은 고용 효과 외에도 사회적 책임을 위해 경쟁 업체 인수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은 지양하며 소매점 유통 외에 타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기로 조합원들이 1인 1표제를 통해 결정, 유지해오고 있다. 각 매장들이 경영 악화를 겪지 않도록 저금리 대출과 경영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 독일의 세계적 섬유 제조장비 유한회사인 `칼 마이어`GmbH에서 학생들이 자동차를 개조하며 현장 실습 경험을 쌓고 있다.
▲ 독일의 세계적 섬유 제조장비 유한회사인 `칼 마이어`GmbH에서 학생들이 자동차를 개조하며 현장 실습 경험을 쌓고 있다.

한국형 도제시스템 모델 獨 `칼 마이어`社
교육실습 병행 인재양성으로 기술경쟁력 확보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직원을 채용해 실무에 투입하기 까지 신입사원 재교육에 일인당 평균 6천88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한국도 올해부터 한국형 도제(徒弟) 시스템인 `일·학습병행제`를 도입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를 조기에 확보할 수 있는 이 제도의 모델은 독일이다.

이번 해외취재 과정에서 비록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독일의 인기 회사 형태인 GmbH(유한책임) `칼 마이어`(KARL MAYER)를 방문해 인재양성 시스템과 독일 기술산업 경쟁력의 비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 원단 제조기를 생산, 공급하는 이 회사는 고등학생이 학업과 실습을 병행하는 3년 과정 직업교육실습 프로그램인 `아우스빌둥`(Ausbildung)과 대학·대학원생 대상의 듀얼(dual)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 악셀 슈타인바이스(50)교육담당 수석매니저는 “다른 나라와 같이 독일 젊은이들도 현장 근무를 꺼리는 현실에서 이 제도를 통해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고 사회적 역할도 하고 있다”면서 “회사 비용으로 3년 교육 과정 동안 학생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고용을 결정할 수도 있는 만큼 전혀 모르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 부담이 적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일체의 정부 지원 없이 아우스빌둥 학생들을 위해 연간 100만 유로(13억4천만원)을 지원 중이다. 또 학·석·박사 과정이 대상인 듀얼시스템을 위해 매달 학사 교육생 1천유로(134만원), 석사 1천500유로(201만원)의 실습비를 지원, 학업에도 도움을 준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방학에는 해외 사업장에서 팀프로젝트 등 실습에 참여한다. 이 같은 장점으로 인해 두 제도에 한해 35대 1의 경쟁을 뚫고 직업교육생이 몰리고 있다. 학생들이 교육과 실습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자동차 개조 등 기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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