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나라 전체가 복지논쟁에 휘말리고 있다. 복지문제마저도 흑백논리에다 정치화, 이념화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남도지사와 경남도교육감의 무상급식 논란이 촉발되면서부터 무상보육, 신혼부부 집 문제까지 청와대 그리고 여야 할 것 없이 온통 정치권이 복지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렇다 보니 마치 복지의 주인공들이 바로 작금의 정치권이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복지관련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의원들이지만 복지에 대한 수혜와 경제적부담은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국민들임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모양이다.

여야는 지금 제 머리 자르기에도 정신이 없다. 여당은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야당은 `정치혁신실천위원회`를 내걸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혁신(革新)을 외치고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최소의 의무(특권을 내려놓기 등)를 혁신이라고 요란하게 포장한다. 이런 포장을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마침 최근 `글로벌인재포럼 2014`의 연사로 초청받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총장 랄프 아이흘러(Ralph Eichler)의 일침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진정한 혁신이란 아무런 혁신정책도 내어 놓지 않는 것”이라고. 혁신주체들이 스스로 각성하며 행동해야 진정한 혁신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런 정치권에게 과연 우리의 복지문제를 위임해도 될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근대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으로 대체로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꼽는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서유럽 중에서도 복지선진국들이다. 국민소득도 우리 보다는 훨씬 높은 나라들인 만큼 향후 상당기간은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봐야 할 나라들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에서 생산적인 복지가 어떻게 선순환 되고 있는지 단면만 살펴보기로 하자. `마그렛`은 필자가 스위스에 거주할 당시 이웃에 거주한 아주머니다. 독일과 인접한 크로이츨링겐이라는 스위스의 조그만 도시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신경과 여의사이기도 하다. 몇 년 전 한국의 모 TV 방송국에서 독일과 스위스의 전문 직업인들의 납세 의식과 이곳의 연금 제도를 취재하면서 이 병원을 찾아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인터뷰는 싱거웠다. 벌어들인 만큼 정확히 신고하고 세금 내는 것이 뭐가 이상하냐고 반문하는 `마그렛`이었다. 스위스에서도 의사는 고소득층에 속하고 그 만큼 고액의 세금을 납부한다.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납세의 의무란 당연한 것이었고 거부감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자신이 의학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도 국민의 세금 덕택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들이 납부하는 고액의 세금이 복지교육시스템을 선순환 시키는 중요한 재원(財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스위스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서유럽 선진국 고액납세자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일반적인 납세 의식이다.

스위스나 독일 등지에서 무상급식 등은 이뤄지지 않지만 대학의 등록금은 없다. 등록금 대신 약간의 수수료 정도만 부과될 뿐이다. 우리는 무상대학교육으로 표현하지만 물론 무상이 아니다. 교육수혜자가 직접 부담하지 않을 뿐,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너도 나도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아니다. 학문에 흥미와 소질이 있는 학생들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너 자식 내 자식 할 것 없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공동의 미래자산으로 여기기에 세금으로 공부시키는 시스템을 유지한다. 물론 학문보다는 개성과 자질을 살려야만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와 같은 교육시스템은 철저한 국민의 합의에 의해 이뤄진다.

복지시스템은 인기영합적인 정치인의 공약으로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수혜자이자 결국 부담자인 국민의 합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요란한 혁신보다는 이것만큼이라도 뼈저리게 느끼는 정치권을 보고 싶은 것이 요즘 우리나라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