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헌법재판소가 표의 등가성을 내세워 현행 3대 1의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 편차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내년 말까지 2대 1로 조정하라고 판결하면서 정치권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헌재 결정대로라면 62곳이 분구나 통폐합 대상이며 통폐합 선거구 대부분은 영·호남지역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인구밀집지역은 의석수가 늘어나지만 농어촌 등 지방은 의석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경북지역은 영천과 영주, 문경·예천, 군위·의성·청송, 고령·성주·칠곡, 김천이 인구수가 기준치에 미달해 통폐합이 예상되는 선거구다. 표의 등가성은 마땅히 존중돼야 하겠지만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이나 국가균형발전을 도외시한 결정이라는 논란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 의석이 늘어나면 여야의 선거공약과 득표 전략도 수도권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구나 경북지역의 의석수가 현행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모든 것을 차지하고서라도 특정 정당의 공천이 바로 특정지역의 당선으로 이어지기에 국민의 눈치보다는 오히려 당의 눈치를 봐야하는 하는 것이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의 싹은 여기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참에 선거구획정과 함께 망국적인 지역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 그리고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표의 등가성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의 사표(死票)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도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국민들의 의사가 정확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정치의사결정에 반영되는지에 달려 있으므로 표의 등가성과 함께 사표최소화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 어느 나라의 정치시스템에도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기회에 독일 정치의 골자를 살짝 엿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독일 연방하원에서는 지역구 의원 299명, 정당명부 의원 299명으로 총 598명의 의원을 뽑는 정당명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총 의석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 총 16개의 주의 인구비례에 따라 지역구가 배분되며, 각 주에는 지역구 개수만큼의 정당명부 의원 정원이 배분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정당득표(비례대표)와 인물득표(지역구)가 강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정당별 총 의석수가 정당 지지율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예를 들어 A정당이 30%의 정당지지를 받았다면 A정당의 의석수가 30%가 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투표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1차 투표`와 지지 정당을 뽑는 `2차 투표`로 나눠지며 여기까지는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2차 투표 결과에서 전국 득표율이 5% 이상이거나, 전국에서 3개 이상의 지역구에서 승리한 정당만이 정당명부 의석을 얻을 수 있다. 군소정당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다.

문제는 정당의 총 지역구 당선자 숫자보다 정당이 확보한 의석수가 적을 경우에 대한 문제이다. 앞의 예를 들어, 베를린 지역의 총 의석이 지역구 50석, 정당명부 50석으로 총 100석인데 A당의 경우 지역구 의원 40명이 승리하였으나 정당지지율이 35%에 불과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A당은 전체 의석 100석 중 35석만 차지할 수 있다. 문제는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40명을 어떻게 처리할 것 인가다. 독일은 지역구 당선자에 대해 탈락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아래, 100석을 정당별로 분배하긴 하지만 A당의 지역구 의원 초과당선자 5명은 국회의원직을 유지한다. 이로 인해 베를린의 총 의석수는 105석이 되며 문제의 5석이 `초과의석`이 된다. 독일의 국회의원 수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나라마다 정치가 국민의 신임을 받기는 어렵지만 독일 국회가 국내 현실에 비해 유독 신임을 받고 있는 탓인지 이처럼 독일 국민은 `초과의석`을 용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