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세계 각국에는 뛰어난 경쟁력을 지닌 산업들이 밀집돼 있는 클러스터들이 산재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장 대표적인 클러스터로는 실리콘밸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클러스터는 지역 내에 소재와 부품 그리고 완성제품에 이르는 일련의 서플라이체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서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소재는 부품에, 부품은 최종제품에 부가가치를 추가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개발해 동일 업종의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을 모색한다. 이와 같은 자율적인 선순환 메커니즘의 작동은 각 기업 자체의 이노베이션을 가속화하면서 동시에 클러스터 전체를 혁신적인 클러스터로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최근 주목하고 있는 화두 중에는 생태계라는 단어가 있다. 생태계라는 것은 좁게는 어느 한 지역에 국한시킬 경우 늪지 또는 연못이나 저수지가 될 수도 있다. 동해안의 맑은 청정해역 전체를 생태계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바다 생태계는 플랑크톤부터 최상위의 포식자에 이르기까지 먹이사슬의 각 계층별로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조건은 그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각 개체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낚시 포인트라는 것도 결국은 이와 같은 생태계가 매우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는 전제하에 읽어내는 것이며 그러한 낚시 포인트에서 낚시에 실패하는 것은 결국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어디선가 폐수가 흘러들어와 생태계를 파괴했거나 수입산 배스라는 물고기가 들어와 그 생태계를 존속시키는 DNA를 완전 변질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산업의 생태계도 최대한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제대로 된 클러스터와 생태계는 결국 같은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클러스터와 생태계는 또 다른 제대로 된 클러스터와 생태계와도 무리 없이 융복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저수지에 빗물이 아무리 쏟아져도 같은 민물이기 때문에 큰 지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포항지역 경제로 눈을 돌려보자. 포항은 창조도시를 지향하면서 보다 역동적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강소기업으로 육성될 만한 혁신적인 기업들을 유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편 포항의 경우 이미 대부분 철강산업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보다 엄격한 잣대로 선진국의 클러스터와 비교한다면 아직은 진정한 철강산업 클러스터라고 하기에는 좀더 발전시킬 영역이 남아있다. 현재의 포항 철강산업 생태계는 포스코가 지난 수십 년간 규모가 확대되면서 보다 세분화시킨 다양한 업무분야를 좀 더 전문화하거나 경영효율의 제고를 위해 스핀오프를 통해 형성시킨 먹이사슬에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먹이사슬 내지는 서플라이체인의 형성이 자연발생적이 아니어서 경직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클러스터가 아닌 일종의 기업집적지인 셈이다.

물론 이러한 기업집적을 클러스터라고 간주하고 포스코로부터 하위의 협력업체로 이뤄진 큰 그림을 생태계라고 볼 수 도 있다. 그러나 포항의 이러한 기형적인 클러스터와 생태계가 진정한 자율경쟁과 생존을 통해 특히 소재에서 부품으로, 부품에서 최종제품으로 이어지는 서플라이체인이 부재한`2%`부족한 클러스터의 상황에서는 여타 기업들의 유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포항스타일의 클러스터에 융합되어 제대로 된 생태계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앞으로 포항에서 향후 수십 년 후에 진정한 창조도시로 불리는 생태계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플랑크톤에 해당하는 지역 대학출신의 지역내 창업을 유도하는 가장 기초적인 생태계의 기반조성과 더불어 가능한 지역내에 부족한 철강기반의 최종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유치에 중점을 두어 진정한 철강산업 생태계를 조성시키는 전략의 추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