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렇게 가는 거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 상주국제승마장
▲ 상주국제승마장

상주 박물관 가는 길은 볼거리가 많다. 전통의례관 옆, 의우총(義牛塚)은 동화책과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 의로운 소 무덤이다. 임봉선 씨가 키우던 암소 누렁이가 갑자기 고삐를 끊고 자취를 감췄다. 마실을 뒤지던 소 주인은 김보배 할머니 묘소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누렁이를 발견했다. 생전에 김 할머니는 누렁이를 따뜻하게 보살폈다. 사랑을 받았던 누렁이는 자신을 돌봐준 이가 죽자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주인이 달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누렁이는 김 할머니 집에 가서 문상하듯 영정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상주들은 문상 온 누렁이에게 막걸리, 두부, 양배추를 대접하고 예를 갖췄다.

소가 죽자 사벌면 주민들이 장례식을 치렀다. 누렁이는 꽃상여를 타고 동네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상주박물관 옆에 묻혔다. 누렁이는 명실상감 한우 홍보관`에 박제된 모습으로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부끄럽다. 인정에 연연하지 않고 의리나 도덕을 내세우던 시대의 호걸들은 영웅문이나 무협지에서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의롭다, 의리를 지킨다.`는 말이 객 같다.

잠시 박물관을 둘러보고 국제 승마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주차장 가는 길에 마당(馬堂)이 있어 잠시 들러본다. 마당제는 말과 관련된 신에게 드리는 제례의식으로서 천사지신, 선목지신, 마사지신, 마보지신의 4신위를 모신다. 조선 시대에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임금이 주관하던 큰 제사였으나 1909년 국운이 기울던 때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폐지되고, 이로부터 약 100년간 명맥이 끊겼다가 지난 2011년 학술대회 등을 거쳐 부활됐다. 상주시에서는 말 문화의 대중화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말 산업의 성장을 기원하고자 매년 10월 12일에 제(祭)를 봉행하고 있다.

말은 제왕 출현의 징표로서 초자연적인 세계와 교통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왔다. 혼인 풍속에서 신랑은 백마를 타고 가는데, 이것은 말과 관련된 태양 신화와 천마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말은 태양을 나타내고 태양은 남성을 의미한다. 기마병은 전투를 승전으로 이끈다 하여 말은 씩씩한 무사를 나타내며, 말띠에 태어난 사람은 웅변력과 활동력이 강하여 매사에 적극적이라 하였다. 십이지에 말은 남성 신을 상징한다.

마방 앞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살피다 `순심이`가 눈에 들어왔다. “순심이는 심술보 할매라 불러요. 승마 체험을 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데 할 일은 다하면서도 생색을 내고 투덜거려요.” “이름이 순심이라 순할 줄 알았는데, 순해지라고 지은 이름인가 봐요. 허허.” “얘들도 사람을 간봐요. 못됐죠. 사람이 만만해 보이면 함부로 날뛰거던요.” “말들이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사람이 말보다 위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단호하게 훈련을 시켜요.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으니까요.” 말은 잘못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쓸까. 채찍으로 엉덩이 몇 대쯤 맞겠지.

“교관님은 말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요.”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말을 타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죠. 어릴 때는 상처를 많이 받아서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어요. 가난해서 마음대로 승마할 수 없었고 여자가 말 타서 뭐하겠냐는 시선 때문에 고민도 했지요.”

가난해서 꿈을 접었고 여자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부모님 시대에도 그랬고 내가 살던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가난보다 더 무서운 건 성차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무시당하던 여자들이 상위 1%의 위치에 있다. 일하는 데 있어서 성차별은 국가 발전에 저해만 될 뿐이다. 가부장제란 감옥에서 아직도 탈출하지 못하고 사는 여성들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후진성이 씁쓸하게 한다.

빈 마방이 많다. 꽤 넓고 깨끗하다. 말들의 호텔이라고 한다. 대회 때 멀리서 오는 말들의 여독을 푸는 장소로 마련된 것일 게다. 말들을 먹이고 재우는데 엄청난 돈이 든다고 하니 개 팔자만 상팔자가 아니고 말 팔자도 사람 팔자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말을 탄 지 28년 정도 되었지요.”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면 얘기 좀 해주실래요.” “승마 인생에서 가장 슬픈 때도 있었지요. 파비오 드 피오레란 말과는 솔메이트였지요. 올림픽에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연습 도중 심한 부상을 당했어요. 마방에서 먹고 자며 고통을 같이했지요. 그랬던 메이트가 팔려 갈 때는 뒷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방에 들어가 한참을 울었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가슴이

▲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먹먹해지고 뻥 뚫린 것 같은…. 더 충격적인 것은 내가 미국에 잠시 나가 있는 동안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더라구요.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져서 말을 돌볼 수가 없더라구요. 메이트 생각이 자꾸 나서….”

사람과 동물의 교감이 낯설지 않다. 동물들도 죽음에 대한 애도, 자존심, 부끄러움, 사랑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동물의 정이 어쩌면 사람보다 더 끈끈한지 모른다. 쉽게 사랑했다 금방 돌아서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기억의 주머니 속에 가시 같은 슬픔 없으랴. 그중에서도 별리의 아픔만큼 오래가는 것은 없다. 그랬던 아픔도 시간이 흐르면 소멸하게 되어 있다. 면역이 생기고 상처는 가라앉는다. 인생, 그렇게 가는 거다. 사랑하고, 헤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