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는이가` 정끝별 지음 문학동네 펴냄, 124쪽

정끝별(50)의 시는 `발견`이다. 매번 시집을 낼 때마다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시의 어떤 부분을 새롭게 발견해낸다.

“똑같이 되풀이해 쓰지는 못할 것 같아요. 너무 빤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요. `나, 이런 것 새롭게 봤어` 하는 것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해로 등단 26년째를 맞는 `중견 시인`이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최근 펴낸 다섯 번째 시집 `은는이가`(문학동네 펴냄)도 제목부터 독특하다. `은는이가`는 주격조사. 시인은 시의 새로운 영토를 톡톡 튀는 언어로 빚어낸다.

시인은 29일 연합뉴스에 “`은는이가`는 여러 가지를 아우르는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시집 제목을 정할 때 `은는이가`를 제목으로 하면 위험성이 있다고 주변에서 말해서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어요. 그런데 `이게 전부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드는 거예요. 주격조사 `은는이가`가 없으면 문장이 전달이 안 되잖아요. 주격조사는 `은는이가` 네 개뿐이고 `그럼 다 한 거네` `더 이상 멀 말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는이가`는 여러 가지를 아우르는 제목이에요. `은는이가` 앞에 모든 명사가 올 수 있고, `은는이가`가 없으면 의미는 통하지만, 문장으로 성립은 안 되고 구체적인 관계와 뉘앙스도 살릴 수 없지요. `은는이가`에는 시에 대한 제 생각,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어요”

 

▲ 시인 정끝별 씨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인은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게 `은는이가`”라면서 “시의 근간은 모어(모국어)에 있는데 저에게는 `은는이가`가 모어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당신 뒤에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나는 내 뒤에 `은(는)`을 붙이기 좋아한다/당신은 내 `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나는 나`는`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중략)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은는이가` 중)

시인은 “저는 `이가`보다 `은는`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라면서 “`은는`에는 제한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 배어 있는 반면 `이가`에는 객관적이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집에 실린 `기나긴 그믐` `불선여정` `한밤이라는 배후` `각을 세우다` `비어 있는 손` 등의 시는 스케일도 크고 이전 시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소크라테스였던가 플라톤이었던가/비스듬히 머리 괴고 누워 포도알을 떼먹으며/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몇 날 며칠 디스커션하는 거/내 꿈은 그런 향연이었어(중략) 누군가처럼 목욕탕에서 침대에서/누군가처럼 길바닥에서 관 속에서”(`기나긴 그믐` 중)

“이 시들은 쓰면서 시간도 오래 걸렸고 굉장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전하고 다르게 쓸 수 있어서, 이제 나도 시인이라고 명함을 내밀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은 시집 첫머리에 “이렇다 할 도박력도 없이, 이렇다 할 판돈도 없이” “다섯 번째 패를 돌린다”고 했지만 그의 팬들은 또 다른 정끝별을 `발견`할 수 있다.

/정철화기자

    정철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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