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 각자 통치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왕조가 바뀌면 전 왕조의 흔적을 철저히 지우는 것이 중국이다. 황제가 바뀌면 황궁까지 말끔히 뜯어내고, 새로 짓는다. 그래서 중국에는 자금성 하나만 남아 있다. 마지막 황제 `부이`가 지은 황궁이고, 그 이후 다른 황제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흔적지우기와 정책의 단절은 어디에서나 보인다.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으레 전임의 흔적을 지우고 신임의 업적을 부각시킨다. 가장 심한 곳이 서울시이다. 경인아라뱃길은 후속 조치가 없어 지금 무용지물이 됐고, 2조원 가량의 예산이 그대로 날아갔다.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등 몇가지 정책이 중단돼 총 2조7천500억원의 예산이 허공에 날아갔다. 박원순 시장은 오세훈 시장의 사업을 철저히 지웠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전임 지자체장의 사업을 계승하는 신임은 별로 없다. `재검토`란 구실을 달아 일부 지지자들과 합세해서 전임자의 정책을 지우고 새 치적 만들기를 시작한다. 심지어 4년 마다 한 번씩 `시정구호`가 바뀐다. 각종 시설물들에 바뀐 시정구호를 다시 다는 데 수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자주 바뀌는 시정구호는 시정구호가 없는 것이나 같다. 시정구호는 신임 지자체장의 철학을 담아내지만 자주 바뀌는 구호에 신경 쓰는 시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전임과 정당을 같이 하는 경우에도 흔적지우기는 있는데, 정당을 달리할 경우 서울시처럼 그 변화는 `완전히 뒤집어 엎는` 수준이다. 정책의 연속성이 사라지니, 계약파기와 행정소송이 줄을 잇고, 이미 확보해둔 국·도비는 반환된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행정적·재정적 부담을 지게 된다. 그 낭비의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넘어간다. 시민단체와 지방의회가 이를 견제해서 `연속성을 지킬 것과 폐기할 것`을 구분해야 할 것인데,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어영부영 신임의 뜻을 따른다.

경북도·상주시와 드라이빙센터는 상주시 부곡리 일대에 43만8천467평의 부지를 확보, 2천535억원대의 MOU를 체결했지만, 지난 6월 지방선거로 시장이 바뀌면서 뒤집어졌다. `재검토`대상이 된 것이다. 상주시의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든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인데, 행정수장이 바뀌었다 해서 거액의 투자를 막는 것은 실책이다.

포항시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 `감사나눔운동`이다. 돈 별로 들이지 않고 시의 이미지를 이만큼 고양시킨 시책도 없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 서거후 새마을 깃발 슬금슬금 내려지듯` 감사운동의 흔적도 사라졌다. 기독교단체나 시민단체에 보조금을 주어서라도 이 운동이 명맥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흔적지우기가 능사가 아니라 `계승 발전`도 훌륭한 치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