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형 정치경제팀장(국장)

지난 주말 공학도인 아들을 데리고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을 찾았다. 영일대에서는 주말 3일 동안 `2014 포항철강산업대전`이 열리던 터였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포항철강공단내 주력 업체 20여개사가 참여했으며, 각 기업들은 자사가 생산하고 있는 철강제품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아들이 다소 불만섞인 말을 내뱉는다. “철강은 덩치가 크고 무거운 것이 아닌가요? 철강제품이 신약제품처럼 가볍고 크기도 작네요”라며. 철강은 중후장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공과대학에 다니는 아들에게도 각인돼 있는 듯 했다.

아들에게 말한다. “중후장대한 철강은 장치산업이었지. 불과 반세기 전만하더라도. 이젠 전세계적으로 철강의 첨단화 경쟁이 본격화했거든. 무겁고 큰 철강은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는 것 같구나”라고.

요즘 철강산업의 사양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별히 제철보국의 기치로 한국 산업화의 주력이 장치산업으로서의 철강이었다면, 21세기 철강의 지향점은 신소재와 첨단화로 맞춰져 있다. 세상 구석구석이 변하지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LTE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미래 먹거리 또한 그 시대적 수요에 맞게 광속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미국 피츠버그대 마크 노덴버그 총장이 포항을 찾았다.

포스텍과 포항지역 산·학·관 모임인 AP포럼의 초청으로 포항을 찾은 그는 “피츠버그의 대학은 의료와 에너지 등 유망한 5개 분야의 연구·기술을 창업으로 적극 유도했다. 피츠버그 부활의 불씨였다”고 소개했다.

피츠버그는 USS(US스틸)로 대표되는 철강도시였다. 노덴버그 총장의 아버지도 USS에서 은퇴했다. 1970년대까지 번영을 누리던 피츠버그는 철강산업 쇠퇴로 나락의 길을 걸었다. 1994년에는 노동자가 12만명에서 2만8천명으로 격감하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대학과 기업·지방정부가 힘을 모았다. 지역발전을 고민하는 `앨러게니(Allegheny·피츠버그를 끼고 흐르는 강)모임`을 만들어 철강대체산업을 찾았다.

의료와 에너지·정보통신(IT)·첨단제조업·금융서비스 등 5개 분야가 지목됐다.

주립인 피츠버그대는 바로 옆 사립인 카네기멜런대와 손을 맞잡았다. 두 대학 총장은 앨러게니의 좌장을 맡아 지역 혁신에 앞장섰다.

1995년부터 피츠버그가 다시 살아났다. 고용이 늘고, 도심이 북적였다. 피츠버그 의과대학은 1만명이던 직원이 6만명으로 늘어났다. 피츠버그대는 인슐린을 세계 최초로 합성해 로터부르가 노벨상을 받았다. 구글은 신제품 개발 장소를 물색하다가 카네기멜런대의 우수성을 인정해 피츠버그를 선택했다. 철강도시가 지식기반 도시로 부활한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은 지난 19일 한국JC전국회원대회 참석차 포항을 방문한 후 가장 먼저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동상을 찾았다. 동상은 포스텍 노벨동산에 있다.

김 대표는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박태준 회장이 안계셨으면 우리나라에 산업의 쌀인 철강재가 국제경쟁력속에 생산될 수 없었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무한한 존경의 뜻을 드립니다”라고.

청암은 기억할 것이다.

포항제철을 건설, 굶주린 조국에 산업의 쌀을 제공하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그리고 철강과 첨단이 공존하는 미래 포항을 위해 대학과 연구소 등의 설립과정의 의미를.

막강한 연구력을 지닌 포스텍의 역할론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철강기업들이 사면초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 학교는 총장 선임을 놓고 학내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대학의 제역할을 위한 환골탈태의 과정이기도 하겠지만 개교 이래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청암의 설립취지가 무색하다. 대학은 지역사회 생태계 전반을 이끌어야 한다. 정신문화의 변혁에서부터 미래 먹거리산업까지. 더 이상 고전적인 아카데미, 폐쇄적인 연구집단으로 칩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다.

`철강 이후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의 절박한 화두에, 포항은 `형산강의 기적`을 기다려선 안된다. 그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