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현대인들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을 오늘날 세계 미술계는`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라고 부른다. 정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그린다는 행위의 개념을 모두 무시하고 그저 자극적이고 기괴한 형상과 흔적만을 만들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문과 고민만을 만들어 주고 있다. 현대미술이 전시되고 있는 미술관이나 국제적인 비엔날레에 가면 나 빼고는 모두들 현대미술에 대해서 이해하고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된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무지를 자책하며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 나온 경험들이 현대인들을 미술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미술현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는 필자 역시 기괴한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게 되면 도대체 작가가 무엇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며,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경우를 흔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을 보는 일반 관객들 대다수는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돌아서 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처럼 복잡함과 혼돈스러움이 현대미술의 진정한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왜 이렇게 기괴한가?`라는 고민은 비단 우리들만의 문제이며, 무지의 결과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전 대구미술관에서 마련된 워크숍에서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수석편집장인 리차드 바인은 이러한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고민을 진지하고 해학적으로 풀어 줬다. `아트인 아메리카`는 미술전문 잡지로서 현대미술의 중심인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이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겸 평론가가 바라보는 현대미술에 대한 시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술에 대한 고민과 지엽적인 시각의 한계를 극복해주는데 충분한 해설과 자극이 됐다고 본다. 라차드가 바라보는 미술과 화가는 중세시대 미술이 가지는 종속적 의미와 종교적 가치에서 근대산업혁명 이후 신흥 상공인들에 의해 새롭게 변화 되어진 미술에 대한 가치관과 이후 달라진 예술가의 위치와 가치 등 복합적으로 형성되어지는 시대적 변화들을 다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인들에게 점점 자극적 의미와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 이러한 미술은 진정 우리시대가 고민해야 할 인간 본질의 삶과 그 가치관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19세기 사실주의 대표적인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이라는 작품은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 돼 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이 작품이 처음 그려졌을 때만 해도 관객들은 엄청난 충격과 혐오감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오늘날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은 이 작품을 대하며 더 이상 충격과 자극을 받지를 못한다. 여느 고전작품들 감상하듯 자연스럽게 감상을 이어 간다. 하지만 쿠르베의 작품 앞에서 젊은 여성이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한다면 관객들의 반응은 어떻게 될까? 극사실로 묘사된 그림과 인체의 은밀한 부분을 직접 보여주는 차이에서 관객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날 것이다. 미술관에 박제된 작품에서 받는 감동과 자극은 이제 보편화 되어져 버렸지만 여성의 성기가 가지는 비밀스럽고 은밀한 호기심을 눈앞에서 현실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또 다른 쾌락과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건 아니 퍼포먼스는 얼마 전 오르세 미술관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며, 현재 유투브를 통해 확인 해 볼 수도 있다. 현대미술은 왜 이렇게 기괴한 걸까? 현대작가들은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과연 현대미술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과연 있는 것일까? 이 글을 쓰면서도 의구심만 점점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