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서울본부장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5%가 개헌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는 게 소통이고 국민의 의견에 대해 반대로 하는 것이 불통이다.”

`개헌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개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1월 8일 당 최고중진회의에서 이렇게 작심발언을 한다. 그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블랙홀처럼 다 빨아들이는 이슈다. 올해는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한 지 이틀 밖에 안 된 시점에 나온 대응 형식이어서 논란을 빚었다.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즉각 “개헌 문제보다도 국민이 먹고사는 경제문제에 중점을 둬야 하며, 금년에는 모두 다 같이 박근혜 정부를 팔 걷고 도울 때”라고 반박했다. 김무성 의원도 언론인터뷰에서 “이재오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며 서 의원을 거들었다.

같은 날 이재오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작은 충성을 행하면 곧 큰 충성의 적이 된다`는 뜻의 행소충 즉대충지적야(行小忠 則大忠之賊也)라는 한문 구절을 남겨 불편한 심경을 빗댔다. 중국고서 한비자에 나오는 이 글귀는 전쟁터에서 갈증을 느껴 물을 찾는 주인에게 물 대신 술을 바친 충성스러운 하인 때문에 결국 주인이 술에 취해 패전하게 됐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서 `개헌론`이 심상찮은 기운을 품고 폭넓게 회자되고 있다. 국회의원 148명이 참여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1일 조찬을 시작으로 8개월 만에 기지개를 켤 모양이다. 이 모임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에 초점을 맞추고 `국민직선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조문화 작업까지 진행 중이라고 소문이 나 있다.

앞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는 지난 4월 2일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임기를 6년 단임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회 양원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 자문 의견을 발표했다. 이 자문 안은 총리에 대한 국회의 불신임권을 부여하고, 국무총리의 신임요구를 국회가 부결한 경우 `국무총리 제청에 따른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인정한 점이 눈에 띄었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해 드러나는 `대통령무책임제`의 폐단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기본인식을 바탕으로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 `개헌론`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되고 있다며 자신만만하다. 이 시점에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시대적 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방분권 개헌`이다. 20년 지방자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이미 `지방자치` 정신을 헌법적 가치의 핵심에 접합하지 않고서는 효과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다.

문제는 우리 정치권이나 지방정부에 `지방분권 개헌`을 추동할 넉넉한 힘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서 “지방자치 20년인 지금까지 지방분권의 핵심 요소인 권력이양과 자원배분 모두 제대로 된 게 없다. 돈과 인사 등 지방의 운명을 여전히 중앙정부에서 틀어쥐고 있다. 지방자치는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는 절박한 소회를 토로했다.

세상의 그 어떤 권리도 거저 나누어지는 것은 없다는 진실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일깨워주는 냉엄한 교훈이다. 아직은 잠룡들이 은인자중하고 있는 선거공백 기간을 적합한 타이밍으로 여기고 정치권에 불기 시작한 작금의 `개헌` 바람을 우리 지방자치의 위상을 크게 진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과 지방정부와 지역언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고 실천에 나설 때다. `물`을 먹여야 할 위기의 순간에 `술`을 먹여 실패를 자초하는 우를 범해서는 정말 안 되지 않는가 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