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스위스 연방 철도에서 운영하는 기차에는 일반열차든 급행열차든 1등 칸과 2등 칸으로 구분돼 있다. 당연히 1등 칸의 가격은 월등히 비싸다. 세계 최고의 부국인 스위스라지만 여유 있는 사람만이 이용한다.

그런데 1등 칸을 바라보는 2등 칸 승객들의 입장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거부감이나 위화감 따위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서비스 부분에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겨우 1등 칸에는 2등 칸에 볼 수 없는 하얀 시트가 좌석 위 부분에 덮여있을 뿐이다. 다른 것은 똑 같다. 그래서 2등 칸의 승객들 중에는 1등 칸의 승객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1등 칸에서 비싼 요금을 지불한 덕분에 그만큼 자기들도 저렴하게 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결국 그 비용은 사회를 이롭게 한다는 사고의 차이 때문이다. 별것 아닌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웃돈을 얹어 비용을 지불하니 기부행위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스위스에는 `히어시란덴`이라는 고급 병원 체인이 있다. 물론 스위스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허용한 것이다. 이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의무적인 의료보험료 보다 훨씬 비싼 개인의료보험이나 추가보험에 가입한 여유계층이다. 이 병원 역시 일반 스위스인들에게 별 다른 저항 없이 운영되는 고급병원이다. 인근 지역인 독일이나 프랑스 사람들도 상응하는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사회적인 연대감을 중시하는 서유럽 선진국에서 이 같은 병원들이 별 다른 저항 없이 오히려 환영을 받으며 운영되는 이유는 뭘까? 해답은 앞서 언급한 열차 1등 칸의 존재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스위스도 독일 등 서유럽선진국들과 유사한 의료보험체제를 갖추고 있다. 나라마다 세부적인 것들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큰 틀로 봐서는 공통점이 있다. 암이나 희귀병 물론 웬만한 질병은 전액 의료보험에서 지급된다. 가정에 타격을 가하는 치료비는 전액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다. 국가가 책임진다기 보다는 전 국민이 책임진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적이긴 하지만, 전 국민이 의료보험료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히어시란덴`이라는 고급병원에서는 제공되는 서비스의 일면을 보자. 예를 들어 알콜이 허용되는 환자가 있다면 이들에게는 프랑스산 고급 와인이 제공된다. 물론 최첨단의료장비의 동원은 기본이다. 여기서 거둬지는 막대한 수입의 일부는 세금으로 징수되고 일부는 시중에 나돌게 된다.

그렇다면 고급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일반보험가입자들이 찾는 일반병원은 어떤 대단한 차별이 있을까? 여기서도 당연히 최첨단 의료장비가 동원된다. 다만 프랑스산 고급와인만 제공되지 않을 뿐이다. 부자들은 제법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일반 시민들도 위화감 없이 바라보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최경환 부총리가 주도하는 경제팀의 노선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재정 및 통화팽창정책이다. 멈춰선 한국경제를 돌리기 위해서라면 쓸 수 있는 공급경제정책이다. 그러나 모든 경제정책에는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가 따른다.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호황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인플레 현상이 따르게 마련이다. 경기부양과 물가는 동시에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다.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 지는 건 좋지만 집값 급등은 집 없는 서민을 죽이게 된다. 또 다른 경제정책의 배합이나 경기부양의 한도를 절묘이 조절해야 하는 과제를 최경환 경제팀이 안고 있는 것이다.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묘안을 찾아야 한다.

소비의 물꼬를 트면서 부작용 없이 내수를 진작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부자들이 돈을 풀도록 하는 것이다. 부자들이 돈을 쓰면서도 위화감과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소비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경기부양책의 하나다. 스위스 부자들의 소비행태 처럼 국민들의 위화감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 국민적 정서가 앞서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