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서울본부장

연전 어떤 외국 외교관이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자들을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모두 부자가 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이 이율배반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세계가치관조사기관(World Value Survey)이 얼마 전 발표한 2010~2014년 설문조사 결과, 한국인의 67.2%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소득재분배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상위 1%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몫은 지난 1998년 6.9%에서 2011년 11.5%까지 빠르게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요약하면, `한국인들은 부자를 욕하면서 대체로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부의 쏠림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소득재분배에는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모순된 정서적 경향 속에 살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참 얄궂은 인심이다.

7·30 재보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전략공천 방식으로 광주광산을 지역구에 후보로 내세운 `광주의 딸`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 대한 연이은 구설수가 전국 선거판을 자극하고 있다. 처음에는 생니 뽑듯, 출마를 선언한 유력정치인들 다 뽑아내고, 초짜배기 권 후보를 갖다 세운 일로 당내에서 시끄러웠다. 본선이 시작되면서는 논문표절이다, 위증교사다 하고 말이 많더니 급기야는 남편의 수십억 재산 축소신고 의혹이 불거졌다.

꽁지 생머리에 정장을 입은 수수한 이미지로 진보세력들로부터 `시대의 양심`인 양 추앙되던 권은희 역시 역설적이게도 `부(富)=악(惡)`이라는 보편적 선입관에 부딪치면서 미묘한 괴리감을 확산한다. 떳떳한 `부`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도 축소해야 할 까닭도 없어야 맞다. 뒤늦게 펼치고 있는 절차상 `합법`이었다는 논리적인 항변이 차라리 초라해 보이는 국면에 이르렀다. 이미 국무총리 후보 두 명과 장관 후보들을 주저앉힌 똑 같은 잣대가 험궂은 부메랑이 되어 새정치연합과 권은희의 이중성에 칼날을 겨누고 있는 셈이다.

예상대로, `미니총선`이라고 일컬어지는 7·30 재보선은 `막장드라마`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여기가 승부처네, 저기가 격전지네 하면서 여야 중앙당이 널뛰어 다니면서 전략회의를 열고 지역구의 숙원사업을 직접 뒷받침하겠다는 굵직한 약속들을 모개로 퍼붓고 있다.

품격도 체면도 없는 무한 까발리기 전쟁도 여전하다. 권은희 한 사람을 줄기차게 또는 무지막지하게 물어뜯고 있는 새누리당에 맞서 새정치연합은 사방으로 다연장포를 쏘아댄다. 서울 동작을의 나경원 후보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 후 도주 중인 유병언 일가와의 인연을 들먹거린다. 경기도 수원정에 출마한 임태희 후보에게는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의혹을 재탕으로 끓여 들이붓고, 권은희가 당한 똑같은 축소신고의 혐의(?)를 찾아 새누리당 모든 후보의 뒷방을 가재뒤짐하기 시작했다.

`막장선거`를 획책하는 정치꾼들의 진짜 문제는 그 현란한 선동정치의 복심에 유권자를 속이려는 음험한 술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아니면 말고`식 폭로전에는 최음제를 써서라도 짧은 선거기간 동안 유권자의 이성을 마비시켜 판을 뒤집으려는 흉심이 내재한다. 지나간 사건 다 끄집어내놓고 상기시키는 것도 그런 발싸심의 일환이다.

견강부회(牽强附會)인 줄 알지만, 변론 한 번 해보자. 한국인들이 부자를 욕하면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은`더러운 부자가 아닌 깨끗한 부자가 되고 싶다는 건강한 희망`의 표출 아닐까. `소득재분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절실한 갈망의 발로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하지만, 미국의 프리랜서 언론인 스털링 시그레이브가 쓴 `돈 vs 권력`이라는 저서에 나오는, `권력은 붉고 돈은 검다`는 규정명제에 자꾸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 노릇을 어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