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모두가 학기말 업무로 바쁜 지난주 필자는 산자연(중)학교 전교생과 함께 학교를 떠났다. 성적 확인, 방학 준비 등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학기말이라 학교 업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분명 말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7월14일부터 17일까지 과감히 학교를 전라도로 옮겼다.

그렇다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시라. 할 거는 다 하고, 아니 다 함을 넘어 더 하고 떠났으니까. 시험도 쳤고, 성적도 확인했고, 진정한 의미의 수행평가도 마쳤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실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방학 전 시간들, 하지만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자연 속에 교실을 만들고 열심히 자연과 소통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자연을 닮아갔다. 소통의 부재, 의미의 부재에서 오는 심각한 교육 문제들에 대한 답을 필자는 이 아이들에게서 찾았다.

요즘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공유할 이야기가 없다. 있다면 오직 게임 이야기 뿐. 이 자리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제도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추억 하나 만들어 주지 못하는 죽은 교육에 우리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방치해야 할까. 자유학기제다 뭐다 해서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고는 있지만, 과연 우리 학생들은 얼마나 이야기할 거리가 더 생겼을까.

그런데 분명 한 건 산자연학교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서로 서로 도우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비록 방학이지만 남들 다 하는 보충 수업은 산자연학교 학생들에게는 별나라 이야기다. 학원은 달나라 이야기, 과외는 우주 밖 이야기다. 물론 성적, 중요하다. 고등학교도 가야하고, 더 상위 학교도 진학해야 하니까. 학생들의 꿈을 이루는 데 성적이 전혀 불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산자연학교 학생들도 공부를 한다. 하지만 시험을 위해 죽은 지식들을 무작정 암기하는 그런 공부는 절대 하지 않는다. 남들이 기를 쓰고 얻고자 하는 점수 따위는 산자연학교 학생들에겐 그저 우스갯소리밖에 안 된다.

산지여정. 처음 들어본 사람들은 많이 낯설 것이다. 아니면 수학여행의 다른 이름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산지여정은 경상북도 교육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은 산자연학교만의 특성화 교과이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 생산지를 직접 찾아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에 대해 직접 체험해보는 교과이다.

요즘 우리 식탁은 이미 중국을 비롯한 식량 강국에게 점령 당한지 오래다. 먹거리 중 수입산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최근 들어 우리 먹거리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돈만 개입되면 그 작은 소리조차 쏙 들어가고 만다. 일부 지역에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바른 먹거리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또한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마저 공룡 기업들의 횡포에 수명이 길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 먹거리를 생산지를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고심 끝에 정한 곳이 전라도 구례와 신안(증도)! 우리 나라 잡곡류 중에 자급률이 가장 낮은 작물이 밀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가장 소비가 많은 작물 또한 밀이다. 즉 우리는 대부분의 밀을 수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소비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소비자들이 일 년에 우리 밀을 십만원 정도만 소비해줘도 우리는 방부제 덩어리인 수입 밀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 최성호의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어른들은 분명 배워야 한다.

밀 이야기를 듣고 증도로 넘어 가던 도중 우리는 우리만의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수박의 압박에 못이긴 녀석들이 고속도로 간이 쉼터에서 빨랫줄에 늘어 선 참새들처럼 줄 지어 서서 방광의 고통을 덜어주는 모습은 한 편의 영화였다. 방학, 제발 우리 아이들을 교실에 가두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 평생을 살 추억 하나 만들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