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다시 지방선거를 잘 마친 대한민국은 세계선거관리협의회(A-WEB, 2013년 창립) 초대 의장국이다. 투표마감 직후부터 거의 완벽하게 집계하는 전자개표기, 이것이 그 영광의 힘이다.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도 대한민국은 167개국 중 20위를 차지해 `완전민주주의`에 들었다. 일본(23위), 대만(35위)보다 앞섰다.

대한민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들의 모임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때는 1995년이었다. 박정희 통치 18년 동안에 마치 역사의 동일한 무대에서 공존할 수 없는 모순관계처럼 극렬히 상충했던 산업화와 민주화가 실상은 상보(相補)관계였다는 사실이 그때 드디어 세계적 안목에서 인정됐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인정`이 아니었다는 점도 증명해 보였다. 경제는 IMF사태를 극복하고 세계 10위 수준이다. 1997년 12월과 2007년 12월, 대립적 정치세력이 선거로써 평화적 정권교체를 해서 민주주의 공고화 기준(two-turnover test)을 통과하고 선진형 민주주의에 진입했다.

2014년 봄날에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자신감은 문화(한류)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북한문제(남북분단)를 거대한 짐으로 짊어졌어도 누구든 `감당할 수 없다`는 비관이나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러한 어느 날 느닷없이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꽃다운 청춘들,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 302명이 수장됐다. 그리고 두 달, 한국은 상중(喪中)이었다.

유병언 일가의 추악하고 음습한 몰골이 낱낱이 드러났다. 관피아들의 문어발 빨대들이 해부됐다. 총리, 내각, 청와대 참모들이 바뀐다. 그리고 국가대개조….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여전히 가슴이 허전하다. 남달리 예민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의 구체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불안과 불만도 그이들의 가슴을 자극할 것이다.

나는 주장한다. 우리의 누적해온 부정부패가 302명을 수장시켰으니 최소한 302개 개혁안의 실현을 통해 모든 희생자들의 목숨을 역사 속에 영원히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 302개 개혁위원회`를 2년 기한으로 신설하고, 실행 책임자 302명을 임명하고, 언론과 시민대표가 수시로 점검하고, 최종 보고와 확인을 거친 대통령이 임무완수를 승인하는 그 특별기구 신설을, 나는 제안한다. 대통령, 총리 집무실에는 302개 개혁안의 실행진도를 알려주는 막대그래프가 붙어야 하고, 그것이 가끔 302명의 부활사진처럼 언론에 나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역설한다.

302개 개혁안이 엄청 많아 보여도 관피아 혁파, 유병언류 혁파만 해도 100개로는 부족할 것이다. 국회 혁파에도 30개쯤은 필요하다. 비겁한 지식인들의 비겁한 작태를 예방하는 일에도 상당수가 들어간다. 그러나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개혁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문제는 인간의 정신이요 윤리다. 정신과 윤리의 수준이라 할 개인의 가치관, 그 가치관의 총체라 할 당대의 문화적 수준이 문제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302개 중 100개는 `물신(物神)`을 다스릴 각종 부적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과 재단(裁斷)에 사용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후 종교 지도자들이 한국인의 가치관을 지배하며 한국사회를 억압하는 `물신`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정신적 가치, 윤리적 가치, 문화적 가치의 회복과 융성을 강조했다. 지당한 말씀들이었다. 다만, 그분들의 종교계에도 `규모의 경제`라는 물신적 경쟁에 몰입한 작태가 포항 등 전국 각처에서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으니 가슴 아픈 현상이다. 이 혁파를 위해서도 20개 이상은 써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경제와 민주주의의 수준에 걸맞은 사회로 거듭나는 길은 세월호 희생자 302명을 역사에 부활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국가대개조의 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302개 구체적 개혁안으로 응답해야 한다. 한국 국회, 한국 정부, 대통령, 그리고 한국사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