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세월호' 침몰 사건은 발행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글로벌이슈로 번져가고 있다. 승객 대부분이 미래 꿈나무들인 고교생들이고 사건에 대한 초기대처가 안타까움을 자아냈기에 일파만파 이 소식은 지구촌으로 번져나갔다.

독일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신문 `빌트'지는 사건이 발행하자마자 베를린에서 3명의 기자들을 급파해 현장에서 밀착취재를 하고 있다.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테른'과 독일의 유력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도 진도 관제센터(VTS)와 세월호가 주고받은 교신내용에 대한 분석,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등 사건의 경과에 따른 사설을 싣기 시작했다.

온 국민이 심적 고통과 상처를 받고 있다. 모두가 트라우마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언론도 마찬가지로 거미줄처럼 얽힌 총체적 부실, 후진국 형 참사, 매뉴얼 재정비, 관련자 엄벌, 부패사슬, 비정상적 관행, 어처구니 없는 관제(官災)…. 중앙과 지역 언론을 막론하고 연일 이어지는 톱기사로 다루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후진형 참사는 반복되지 말아야 하기에 언론들이 당연히 짚어가야 할 대목들이기도 하다.

특히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의 조기탈출에 대한 비난은 내외신을 막론하고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승객에 대한 기본적인 임무를 저버린 직업 윤리의식에 분노하고 있다. 설령 시스템에 잘못이 있었더라도 직업윤리의식 하나에만 충실했어도 이같은 끔찍한 대형 참사는 최소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어긋난 직업윤리의식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는지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일. 희생자 그리고 실종자에 대한 구조의 노력은 최후의 일각까지 계속돼야 한다. 국가가 따로 없고 국민이 따로 없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또한 임무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사회를 한번 돌이켜 보자. 윤리의식으로 무장된 선장과 승무원 역할은 비단 세월호 같은 여객선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게 돼 있다. 직업윤리의식은 이같은 대형 참사에만 강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사회는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과연 직업윤리의식은 토론이나 강요, 그리고 당위성에 의해서만 온전하게 키워질 수 있는 있는 것일까.

직업윤리의식은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소명의식이 수반될 때 극대화된다.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황금만능주의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도대체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실제 현재 서유럽 선진국에서는 그런 교육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작동되고 있다. 지금 그들의 초등학교 수업에서부터 학부모의 협조아래 교사와 학생이 삼위일체가 되어 승자와 패자를 없애며 소질을 발견하고 자질을 키워가고 있다. 공부에 소질 있는 학생, 노래에 소질 있는 학생, 춤 잘 추는 학생, 손재주 있는 학생, 그림 잘 그리는 학생 등등, 초등학교 교사들은 이 점을 간파하는데 집중해야 하고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교사들을 전적으로 믿으며 아이들의 경쟁력 있는 진로를 생각하며 협조해 가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집에서 학부모들이 함부로 과제나 숙제를 도와주지 않는다. 교사들이 학생의 소질과 자질을 판단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사교육이니 과외니 하는 것들은 먼 나라 얘기다.

통상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스위스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쯤이면 학생들의 일차적인 진로가 확정된다. 그들은 나중에 직업의 귀천이나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자긍심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어쨋든 이번 진도 앞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한 채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영전에 우리는 어떤 조사(弔詞)를 올려야 할지 대한민국에서 명색이 어른으로 산다는 자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