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인도 영화 `굿모닝 맨하탄'을 재미있게 보았다. 원제목은 `잉글리쉬, 빙글리쉬(English Vinglish)'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어찌 보면, 식상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영어 초보자들이 겪게 되는 공감 백배의 에피소드를 잘 풀어 내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영어'를 매개로 한 주인공의 성장과 자기 발견, 가족의 소중함 등을 잘 엮어나가 잔잔한 감동도 느낄 수 있는 착한 영화다. 특별히 영화가 더 재미있었던 이유는 일상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있는 권력과 차별, 소외의 문제 또한 잘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좀 소개해 보면, 주인공 샤시는 인도에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그녀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현명한 아내로서 완벽한 내조를 하며,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라두(인도식 디저트의 일종)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음식 솜씨가 좋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이웃의 모습을 좋아하는 샤시는 라두를 직접 배달하며 정성을 쏟을 만큼 이 일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남편이나 큰 딸은 그런 그녀의 재능을 하찮게 생각하며,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자주 무시한다.

현모양처로서 따뜻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샤시의 노력은 생존에 꼭 필요하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고마움을 모르며 마시고 내뱉는 공기처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사실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관계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그러한 하나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정해버린다는데 있다. 샤시가 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결국은 `영어를 잘 하는 사람'만이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 가치만을 강요하는 권력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샤시는 영어를 배울 결심을 하고 `4주 완성 영어클래스'에 등록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문제를 가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며, 때로는 위로를 받고, 때로는 위로를 건네며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 나가게 된다.

“You are entrepreneur(당신은 기업가군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영어강사 데이비드가 주인공 샤시의 직업을 정의해 주는 이 장면을 꼽겠다. 앙터프리너, 우리말로 기업가, 사업가, 창업가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단어의 어원은 위험을 감수하거나 모험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명을 성공적인 혁신으로 바꾸고 그만한 능력이 있어 해내는 사람을 말한다. 샤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으나, 집에서는 단 한 번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작은 사업(small business)을 데이비드는 그렇게 정의해 줬다. 이 호명의 순간을 통해 샤시는 처음으로 `인정'을 경험하게 되고, 비로소 한 가족의 아내에서 한 명의 주체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소통하며, 한 걸음 더 내딛게 됐다.

`굿모닝 맨하탄'의 가우리 신드라는 여성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의 어머니 역시 고향에서 피클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내 사업을 했지만 영어에는 능숙하지 못했고, 감독은 이를 부끄러워했단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인터뷰 했다.

되돌아 보건데 나 역시도 부모님을 무시하며 철없이 굴었던 기억이 있다. 비단 부모님뿐이었으랴! 보이지 않는 권력의 작동에 발 걸려 편견에 치우친 삶을 살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그리고 일생을 `그림자 노동'으로 헌신해 주신 부모님께 고맙고 죄송한 마음 전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