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학생들 대피시킨 승무원 故 박지영씨
단원고 2년 정차웅 군은 친구 구하려다 숨져

▲ 전라남도 진도 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선사 직원 박지영 씨 유족이 17일 목포한국병원에서 조윤선(앞쪽) 여성가족부 장관을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지난 16일 침몰한 세월호에서 끝까지 남아 학생들을 대피시킨 승무원 고 박지영씨의 희생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특히 박씨의 의로운 죽음은 다른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안전을 외면한 채 자신들이 먼저 배를 탈출해 수백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것과 대조되고 있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항해하다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첫 사망자로 확인된 승무원 박지영(22·여)씨. 아이들과 승무원이 서로가 서로를 구할 때 선장은 첫 보트로 1호 탈출을 했지만, 박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구명 조끼를 단원고의 학생들에게 양보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박씨는 세월호 침수가 시작되던 당시 선내로 물이 들어오자 4층에서 구명 조끼를 3층 학생들에게 양보하며 대피 관련 안내방송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된 한 학생은 “승무원 언니(고 박지영씨)에게 `언니도 어서 나가야죠`라고 하자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했다”며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고 증언했다.

세월호에서 구조돼 고대 안산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안산 단원고 김수빈(17)군은 구조 직후 박 씨가 학생들을 탈출시키다다 목숨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군은 “배가 기울면서 3층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승무원 누나가 뛰어 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 내려 목숨을 구했다”며 “당시 10여명이 함께 있었는데 구명조끼가 모자라 승무원 누나가 학생들에게 조끼를 양보했다. 누나 덕분에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구조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승객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던 박 씨의 가정 환경이 밝혀지면서 안타까움은 더 커지고 있다.

박씨의 유족들은 박 씨가 수원과학대학에 입학했다 한 학기 만에 휴학하고 청해진해운 입사를 선택했다. 간 질환을 오래 앓던 아버지가 4년 전 사망하며 가정 형편이 급격히 기울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동생을 위해 박씨는 입사 전에도 온갖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 가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촌오빠의 소개로 청해진해운에 들어간 박씨는 여객선 내 매점에서 근무하며 승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13시간 이상 배에서 근무하는 고된 업무였지만 겉으로는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항상 밝게 웃는 쾌활한 성격이었고 자신이 일하는 배에 가족들을 태워 제주도 여행까지 살뜰히 챙긴 효녀였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한편, 안산 단원고 2학년 정차웅 군도 친구를 구하려고 몸을 던졌다 끝내 목숨을 잃은 것도 `숭고한 희생`으로 회자되고 있다.

정 군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넸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지만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정 군은 평소 부모님의 속을 한번도 썩인 적 없던 모범생이었으며, 검도 3단 유단자로 대학 체육학과에 진학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특히, 덩치가 커 `웅이`로 불리던 활달한 성격의 학생이었으며, 친구들을 잘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고 2학년 조대섭 군도 배가 기울자 구명조끼를 꺼내 복도 끝쪽에 있던 여학생 방을 찾아다니며 조끼를 나눠주고 복도에 있는 어린아이에게도 구명복을 입혔다.

조 군은 구조헬기가 도착한 후 주변의 여학생들을 먼저 보냈고, 자신은 바닷물이 가슴에 차오를 때까지 배에 남아 20여 명을 구한 뒤에야 구조선에 몸을 실었다.

/무등일보 특별취재팀

(한국지역언론인클럽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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