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발행인

직장신공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일화는 유비와 제갈량 일것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조직 내에서 사람과 사람 간에 얽히고 설킨 공명심, 삶과 처세는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 없다.

난세일수록 삼국지가 더 읽힌다는 말은 포커페이스의 달인인 유현덕의 밑천까지 알 수 있었고 의로운 도망자 관우, 말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열여섯 살 고아소년 장비가 출세하는 꿈같은 얘기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도원결의를 한 형제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삶의 고통을 이겨내는 우정들이 배신과 무능의 늪으로 내몰린 현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공명 등 주요 인물들의 처세를 보면 살아가는 길이 보인다고 한 중국지식인 자오위핑의 얘기가 대륙 10대 명강사로 떠 오른 것도 처세술에 몰입한 공직자들의 수강 때문이다.

제갈량을 닮은 머리라면 행시, 사시, 외시는 물론이고 20만명이 몰리는 삼성 고시쯤은 눈감고도 돌파 했을 것이지만 문제는 요즘 공직자들이 제갈공명의 머리만 닮는 것을 원했을 뿐 공명의 청렴도는 꺼내놓지도 않는다.

“성도에는 뽕나무 8백 그루, 메마른 밭 15경(傾)이 있으니 자식들의 의식(衣食)은 넉넉합니다. 신이 밖에 나가 있을 때도 특별히 보살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에 따르는 의식은 모두 관에서 받고 있으니 다른 생업이 필요 없으며 신이 죽는 날 여분의 비단이나 재산을 남겨 폐하의 은총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갈공명이 중원정벌에 앞서 후주에게 올린 출사표이다.

유비가 죽자 촉의 모든 권력은 공명의 손에 있었지만 그는 정권을 뒤엎고 재산이나 모으는 천박한 리더는 아니었다. 그가 죽고 난 훗날 자녀에게 남긴 재산은 출사표에 적힌 내용과 같았다.

제갈공명의 청렴도는 당연히 본받아야 할 사표다.

공명의 뒤를 이은 강유도 후주의 다음가는 자리에 있었지만 집은 낡은 초가였으며 나라에서 주는 옷만 입어 공명 못지않은 청렴성을 지켰다. 부패지수를 46위로 끌어올린 한국의 공직자들이 놓치는 게 공명의 청백리 정신.

사실 처세술로 따진다면 사마의가 한수 위다. 삼국지연의에서 처세의 달인은 제갈량보다 언제나 한수 뒤처지는 상대로 비춰지는 사마의다. 그 사마의는 조비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어린 황제 조예를 조조의 조카 조진과 더불어 지근에서 돕는 중책을 맡았다. 서쪽 전선을 함께 지키던 조진으로부터 늘 의심과 견제구를 받았지만 전략을 내고 전공까지 조진의 것으로 돌렸다.

나이 예순. 조예의 특별한 배려로 고향에 돌아갔을 때도 권력에 뜻이 없음을 나타내는 시 한수를 짓고는 꼬리를 슬며시 내려 버린다. 이렇듯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인내심으로 버틴 탁월한 처세술의 달인 사마의는 조씨 집안 4대를 섬기며 40년을 기다린 훗날에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76살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천수를 누린 셈이다.

어째든 삼국지연의의 저자는 유비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큰 귀(用人術)를 가졌고, 자신을 철저하게 절제하면서도 지적인면에서는 항상 앞서는 관운장을, 의리는 장비를 닮아야 하는 것으로 그렸다.

임기응변과 처세술로는 조조만한 인재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관계만을 따지면 의리 덩어리이고 전장에 나서는 지덕을 고루 갖춘 조자룡만한 인물은 없다. 이런 사람은 한국사회는 물론 중국에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처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를 다 생각하다보면 복잡한 사회생활로 치면 머리에 쉴 공간이 없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이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다. 선악에 대비됐기 때문에 재미있었을 뿐이다. 우선 유비는 우유부단하다. 그걸 닮으면 세상사를 다 놓치게 되며 관우는 결백해서 사람이 잘 따르지 않고 불같이 화를 잘 내는 장비하고는 깊은 말을 나눌 수 없다.

관우 장비 같은 처세술을 한국으로 옮겨왔다가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저항정신의 노조원이 인기투표를 했을 경우 당장 퇴출 대상이다. 자리가 곧 돈일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처 간 숱한 인사들 가운데 청렴인사로 거명된 사람이 여태껏 한명도 없었다는 것 역시 마음이 아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