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동물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동물권이라 한다면 현실에서 그것은 너무나 열악하다. 동물은 인간의 요리 접시에 먹음직하게 담기거나 곡마단에서 인간의 눈요기를 위해 매를 맞으면서 훈련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 섭리가 있듯이 동물과 작은 풀꽃 등 모든 생물은 우주에서 자신의 본성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구제역과 조류 독감 등으로 생매장되거나 살 처분된 생명은 무려 2천800만 마리 정도란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평등과 착취도 문제이지만 인간과 동물간의 불평등은 점점 더 커져서 심각해지고 있다.

조류 독감이 발생하면 발생 농가 3km반경 사이의 모든 가금류를 `살 처분`하는 것을 잔인하게 표현하면 `몰살`시키는 것이다. 독가스로 죽여서 집단으로 매장하는 것은 야만적인 동물 대 학살극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비윤리적 반생명적인 정책으로 여겨지기에 그것은 우리들 마음에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인간은 자기들의 예리한 두뇌를 이용해 질병을 방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세균들은 그보다 수 백 배 더 빨리 증식하거나 변종을 함으로서 인간을 비웃고 있다.

동물 농장 TV프로그램에서는 인간의 성격에서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동물을 살리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반해 어떤 악한 자들은 심하게 학대하거나 괴롭히면서 즐기는 정신병적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았다.

동물도 자연 치유력이 있지만 대기업 형 축산은 저항력을 키우는 기회를 동물에게 주지 않고 허약하게 키운다. 닭은 태어나자 말자 A4용지 크기의 면적에서 날개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바비큐나 닭갈비가 되어 죽을 뿐이다. 겨우 6개월 남짓 분뇨 옆에서 살다가 죽는 돼지 역시, 사회성이 강하고 실은 매우 깨끗한 곳을 좋아한다.

대기업 형 축산의 본질은 `가축이란 정신적 감정적인 면이나 또는 모성 등의 다양한 본성이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오직 경제적 가치로만 판단해 버린다. 가축도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다. 순수하여 오히려 인간이 그들에게서 순진성을 배워야 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가축이 비록 식탁용일지라도 `생명이 갖는 최소한의 복지와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그 걸음은 동물을 인간과 같이 지각과 감각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영국농장동물복지위원회는 가축들이 살아가는 데는 첫째, 배고픔과 목마름에서 자유, 둘째, 불편함으로부터 자유, 셋째, 고통과 질병에서 자유, 넷째, 움직일 수 있는 자유, 다섯째, 공포와 불안에서 자유 등 5가지 자유를 주장했다. 또 동물 복지 향상을 위해서는 정책이나 법 또는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 해결 방법으로는 첫째, 채식을 하거나, 육식을 줄인다, 둘째, 동물복지가 인증된 축산물을 구입한다, 셋째,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을 구매한다, 넷째, 곰 쓸개즙 등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과도한 보양문화를 없애자, 다섯째, 동물 쇼를 관람하지 않고, 모피나 오리털 제품을 구입하지말자 등이다. 이것들은 동물복지의 근간이 된다. 생태계에서 불균형과 부조화로 인해 재앙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는 바로 우리 인간이 받는다.

정부는 녹색 성장이라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이는 환경과 생태를 경제적 성장(가치) 밑에 두는 잘못을 저질러 버렸다. 생명존중과 생태조화를 통해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모두 행복하게 공존 할 수 있는 진정한 녹색성장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 곳이 곧 천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