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계간 `ASIA` 발행인

박근혜 정부의 특별 심벌은 `비정상의 정상화`다. 비정상이란 잘못된 관행과 잘못된 시스템이다. 잘못된 관행의 첫 자리를 부정부패가 차지한다. 잘못된 시스템이 그것을 감추고 부추긴다. 부패척결 없이 정상화는 없다. 부패척결은 정상화의 강력한 동력이다. 세계의 모든 정상인을 경악시킨 `한국의 원전 비리`가 웅변한 사실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면서 잘못된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정치적 행위를 흔히 `개혁`이라 부른다. 이 간편한 말을 왜 버렸을까. 말이 주는 피로감을 줄여 보려는 아이디어가 조금 시적(詩的)인 작명을 낳았을 것이다. 1987년 이래 모든 정권이 한국인의 귀에 대못처럼 박아준 말이 개혁이다. 하지만 실망감이나 배반감이 귓병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도 부패척결을 개혁의 강력한 동력으로 활용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한 주룽지(朱鎔基)가 상하이 당서기와 국무원 부총리를 거쳐 총리에 오른 것은 1998년 3월이었다. 그는 장쩌민(江澤民)의 지원 속에서 반부패 투쟁을 밀어붙였다. 투쟁이란 말에 그의 의지가 보디빌더의 근육처럼 드러난다. 그것은 국유기업 개혁, 금융 개혁, 정부 규제 철폐라는 개혁의 동력이기도 했다. 그때 국유기업 개혁만으로도 약 5천만명(한국 총인구와 맞먹음)이 실직하거나 재배치되었다.

주룽지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부패관리가 아닌 청렴한 관리로 기억되는 것”이라 했다.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었다. 그는 단호했다. “관을 100개 준비하라. 그 중 하나는 내 것이다” 이 말에 주룽지의 개혁을 성공시킨 비결이 있다.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가 부패에 연루되면 자기 목숨을 내놓겠다는 비장한 결의와 기개이고, 또 하나는 그것이 인민의 가슴속에서 공감을 일으키게 만든 청렴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이들 정권의 공통점은 불행히도 날이 갈수록 부패에 깊이 연루돼 개혁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기세 좋게 막을 올렸던 김영삼 정부의 `사정(査定)`이 어떻게 막을 내렸는가? 이명박 정부의 개혁은 또 어떻게 되었는가? 2009년 3월,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불행은 어떤 말을 해도 국민의 가슴에 감동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청렴을 잃으면 결의와 기개는 시드는 법이다.

시진핑(習近平)의 중국 정부는 `개혁의 전면적 심화`를 선언했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을 좀 더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의 느린 속도는 민주투사들의 저항을 부르겠지만, 시진핑의 개혁 드라이브에도 부패척결이 강력한 동력이다. 부패와의 전쟁을 외치고 있다. 고위 당정 간부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그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이중지도`를 `단일지도`로 고치겠다는 뜻도 내비친다. 어떤 문제에 대해 기율심사위원회와 공산당위원회가 함께 지도(指導)해온 제도를 기율심사위원회의 단일지도로 바꾸어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과연 박근혜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주룽지의 성공사례는 청렴과 기개의 중요성을 일러준다. 반면교사는 한국의 역대 정권이다. 성공사례도 있고 반면교사도 있지만, 비정상의 정상화는 시대적 거사(擧事)다. 부정부패는 고질적이고 집단이기주의는 악착같으며, 정파적 이념적 대립이 시스템 뜯어고치기를 가로막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도달해야 마침내 압축성장과 변혁운동의 기나긴 후유증을 벗어날 수 있다. 마라톤의 길이다. 완주할 동력이 충분해야 한다. 대통령의 청렴과 기개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적 덕성이 함께 달리고 응원하고 생수도 준비해야 한다. 시민적 덕성은 개인의 자문(自問)에서 태어나고 자라난다.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진지한 자문이 절실하다. 나는 프랑스 작가 볼테르의 원칙을 되새겨 본다. `소름 끼치는 것들(부조리)을 박살내라. 관용하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