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

라틴 다리(Latin Bridge)와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두 이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리적 거리도 아주 멀다. 라틴 다리는 발칸반도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있고, 중국명이 괄호 속에 따라붙는 센카쿠 열도는 동중국해에 있다. 그러나 2014년은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라는 사실이 두 이름에게 새해의 짝짓기를 시키고 있다. 물론 그것은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다. 100년 전 라틴 다리에서 일어났던 `필연을 위한 우연`이 올해 동중국해의 바위덩어리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이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가?

20세기 벽두, 세르비아는 보스니아를 먹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1908년 중부유럽 절대강자 오스트리아 제국이 보스니아를 무력으로 합병해 버렸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복수의 총구를 닦기 시작했다. 비밀결사조직 흑수단(Black Hand)도 조직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황태자비 소피아가 점령국 현지 민심을 살핀다며 사라예보를 방문한 것이다. 의전은 요란했다. 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그 거리에서 흑수단 요원들이 황태자를 노렸다. 거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첫 번째 암살요원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황태자 일행이 지나갈 때 감히 총을 꺼내지도 못했다. 두 번째 암살요원은 간신히 용기를 내서 수류탄을 던졌지만 황태자의 뒤를 따르는 차 앞에서 폭발했다. 목표물은 멀쩡하고 수행원만 스무 명쯤 다쳤다.

반전(反轉)의 주인공은 황태자였다. 인간미를 뽐내려는 황태자의 돌출행동이었다. 환영식 중에 그가 부상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겠다며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짧은 동안 `전하`의 주위에는 감동의 전류가 강하게 흘렀을 것이다. 어쩌면 대참화의 도화선에 `우연히 불을 붙인` 멍청이는 황태자도 아니고 그에게 총을 쏜 세르비아 청년도 아니었다. 황태자의 운전사였다. 멍청하게도 병원 가는 길을 잘못 들어선 운전사가 밀야츠카강 라틴 다리 앞에 차를 세웠다. 그 자리는 `시러 식품점(Schiller`s delicatessen)` 앞이기도 했다. 때마침 식품점에는 흑수단 요원 하나가 있었다. 스무 살의 대학생 가브릴로 프란치프. 요기를 하러 들른 그는 황태자 암살기도를 포기하고 있었다. 문득 젊은 식욕이 뜨거운 사명감으로 바뀌는 순간, 깜박 허기를 잊은 `피 끓는 민족주의 청년`의 총에 황태자 부부는 즉사했다. 도화선이 다 타는데는 한 달이 걸렸다. 발칸반도를 통째로 삼키려는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황태자 부부는 희생양에 불과했다. 지중해 진출을 염원하는 러시아 제국은 발칸반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와 군사동맹을 맺은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가만있을 수 없었다. 러시아에게 복수하고 싶은 오스만튀르크(터키)에게는 발칸반도가 잃어버린 영토이기도 했다.

9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 그 전쟁 100주년을 맞아 유럽 언론이나 지식사회는 참담하고 잔혹한 야만의 기억을 `유럽연합(EU)`이라는 거대한 연대의 보자기로 덮어버리고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으로 시선을 모으는 듯하다. 과연 동중국해의 바위덩어리에서는 라틴 다리의 그 `기막힌 우연`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가 통찰할 것은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이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필연의 전쟁을 잉태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센카쿠 열도에서 `라틴 다리의 우연`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중국군대나 일본군대의 `피 끓는 민족주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중국군대의 뜨거운 복수심과 일본군대의 뜨거운 자존심은 그 피를 펄펄 끓이는 중이다. 다만, 100년 전 발칸반도에 비해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에는 아직까지 필연의 전쟁이 곧 홍수를 일으킬 먹구름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소나기 먹구름은 형성돼 있다. 누군가 찰나의 실수로 당긴 민족주의의 방아쇠가 국지전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불행한 경우에는 100년 전보다 무기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듯이 그만큼 빨라진 강대국 지도자들 간 소통의 속도가 확전 예방의 둑이 되겠지만, 조기 종전을 성사시키려면 쌍방 피해가 비슷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