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재영 시인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럴 것이다. 쌀밥 보리밥 먹고 김치와 고추장 먹던 입맛으로 갑자기 피자를 먹고, 스파게티를 먹으려면 적응하기까지 배탈도 여러 번 날 것이다. 으레 하던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지금까지 했던 일이 편하고 새로운 것은 낯설어 두렵기까지 할 것이다.

포항에 낯선 길이 생겼다. 낯설기에 조금 두렵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갖고 찾아간다. 포항운하다. 운하라 하지만 어떤 면에서 있던 것을 제 형태로 되돌렸다고 볼 수 있다. 운하는 육지를 파서 인공적으로 강을 내고 배가 다닐 수 있게 한 물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한 수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서쪽에서 홍해까지 갈 수 있는 물길이다. 남아프리카 희망봉 앞을 지나지 않아도 돼 아시아와 유럽의 거리를 일만 킬로미터 이상 단축시겼다.

예전에 포항엔 몇 개의 섬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으로 해도, 상도, 대도, 죽도, 송도 등의 이름에서 섬도(島)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섬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그 섬에 대해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수에즈 운하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포항이란 지명에 운하를 붙이고 물길을 트면서 포항운하는 그 나름대로 운하 성격을 갖게 됐다. 포항운하는 배가 물건을 나르는 운하가 아니라 포항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운하이며, 타 지역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관광용 운하다. 운하가 개통됨으로써 송도(松島)는 섬으로 자기 본성을 되찾았다고 볼 수 있다.

포항운하를 개통함으로써 포항은 1,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향하는 큰 물꼬를 틀었다.

1차 산업에서 1970년대 철강 중심의 2차 산업으로 발전한 포항이 상위 산업이라 할 상업, 금융업, 관광업, 운송업 등 서비스 중심의 3차 산업을 발전시키는 큰 주춧돌을 운하를 통해 놓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섬을 뭍으로 연결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듯이 또한 뭍으로 연결했던 흙을 걷어 내고 물길을 트는 데도 1천600억원이란 큰돈을 들였다. 그 모든 일들이 포항의 미래를 위해, 포항의 발전을 위해 계획하고 추진한 일임에 틀림없다. 막힌 것을 뚫는다는 일은 지극히 당위적이며 해야할 일이다.

형산강에서 동빈내항까지 1.3km의 물길은 컴퓨터로 치면 몸체인 하드웨어(hardware)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외형적인 하드웨어는 새롭기에 한두 번 찾아갈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발길을 붙잡아 두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결국 소프트웨어(software)를 보강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의 품목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문화다. 문화의 의미는 총체적으로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하는 유무형의 자산이다. 흐르는 물줄기 따라 문화가 흘러야 운하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머무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그 또한 민자 유치든 관의 전폭적인 지원이든 돈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전시 및 공연, 예술 등 문화 인프라를 조성해 물처럼 문화가 흐르도록 새로운 투자가 운하 옆으로 이어져야 한다.

작은 갤러리에서 도서관, 카페, 극장 등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공원, 미술관, 관공서 등 새로운 시설까지 포함돼야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이 중심이 되는 운하가 될 때 포항운하의 생명은 살아 꿈틀댈 것이고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