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
⒀ 연산폭포-겸재 정선의 `眞景`을 찾아서

▲ 겸재 정선이 내연산의 비경을 담아 그린 진경산수화 `고사의송관란도`
▲ 두바퀴로 자전거 취재단 일행이 포항 청하면 비학산앞 포항시환경학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바퀴路의 이번 문화 탐방지는 내연산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갑인추 정선(甲寅秋 鄭敾)`이 각인돼 있는 연산폭포를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여러분, 오늘은 속세의 욕심은 모두 내려놓고 내연산을 오르면서 자연과 하나 되어 다함께 신선이 됩시다” 박계현 (사)문화와 시민 이사장의 출발신호와 함께 내연산으로 향했다.

쌍생폭포에 이르러 잠시 땀을 식히며 고개를 드니 왼쪽에는 우뚝 솟은 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용추의 물은 검푸른 빛을 띨 만큼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두 줄기 폭포가 눈발처럼 하얀 물보라를 뿜어내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더욱 장관이다.

좁은 오르막을 한참이나 올랐나 싶더니 갑자기 계곡이 확 트이면서 암자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온 계곡에 울려 퍼졌다. 가슴속에 쌓였던 속세의 때가 모두 씻기는 듯하다. 관음폭포를 둘러싼 봉우리는 마주 솟아 병풍처럼 이어지고 그 안은 다시 확 트여 하나의 거대한 선경을 이루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내려다본 관음폭포는 유리처럼 푸르고 맑았다. 그 아래의 계곡을 굽어보니 정신이 아찔하였다.

눈앞에는 만 길의 높은 절벽이 담처럼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속에 마침내 연산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절벽에 폭포가 걸려 있는데, 절벽 틈을 따라 폭포수가 깎아지른 벼랑에서 곧장 떨어지는데 떨어진 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골짜기가 온통 안개와 흰 눈 속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 세상을 훌훌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연산폭포 사방 암벽에는 머물다간 명사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인가 싶지만 그래도 그 흔적을 남겨두어 후손은 과거를 탐지하는 재미가 있어 그 역시 좋다.

겸재는 이 기암절벽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바위에 새기고 내연산의 진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바로 그때 신일권 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찾았습니다. `갑인추 정선`, 글자가 주변 다른 각자(刻字)에 비해 너무 작게 새겨져있고 마모돼 두 눈 부릅떠야 보이네요.”

겸재는 1733년에서 1735년까지 청하현감을 지내면서 청하 고을의 `청하성읍도`와 내연산의 비경을 담은 `내연삼용추`, `내연산폭포도`, `고사의송관란도`등의 작품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진짜 산천 그린다는 의미에서 `眞景`
연산폭포 기암절벽에 `甲寅秋 鄭敾` 희미한 刻字

명승지 소재로 내면적 주관 표현

“이 박사님 진경산수화가 무슨 뜻입니까. 실제 경치를 그렸는데 실경산수화와 다릅니까?” 박계현 이사장이 미술사학을 전공한 이나나 박사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노·장 사상을 근원으로 하는 산수화는 속세와 단절된, 때 묻지 않은 깊고 그윽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그린 것입니다. 즉 기암절벽과 짙은 운무가 가득하여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산을 그린 그림입니다. 조선전기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중국산천을 그렸습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산천을 그리지 말고 조선의 산수를 그리자는 주장이 일어났습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지닌 가장 큰 의의는 바로 우리나라의 명산과 명승지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과 그 속에 담아낸 작가의 이념입니다.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를 보면 모두 실경을 소재로 하였지만 `실경산수화`라 부르지 않고 오히려 `진경산수화`라고 합니다. 실경을 대상으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형사(형태를 같게 그림)` 보다는 문인화의 요체인 `신사·사의·전신(정신을 그림)`의 묘사에 그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대의 황공망이 `천지석벽도`나 `부춘산거도`에서 실경을 기하하적으로 시각화하여 대상을 재현했던 차원과 유사하며, 명의 심주가 실경을 재해석하여 점·선·면으로 조형화시킨 표현과 흑백의 대비로 음양의 조화에 주목하는 원리와도 같습니다.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는 실제 금강산과 인왕산이 지닌 특수한 현장감이 크게 부각되면서도 흑과 백의 대비라는 음양의 원리에 입각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음과 양은 `주역`에서 세상만물의 근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금강전도`의 화면구성은 암산(陽)이 토산(陰)을 감싸는 태극모양의 원형구도입니다.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금강산의 특징을 절묘하게 드러냈습니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백색의 암산은 북종화 기법의 강한 부벽준으로 표현되어졌고, 수림이 우거진 토산은 서정적인 남종화의 부드러운 묵법으로 처리되어 이 역시 음양의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왕제색도`는 비온 후 맑게 갠 인왕산 모습이 기운생동하게 농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정선은 인왕산의 백색 암산이 비에 젖어 거무스름한 바위로 변화되어 보이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비로 인해 검게 변하여 더욱 중량감 있어 보이게 표현된 암산[양]과 비에 젖어 온통 검게 보이는 숲을 백색의 운무(음)로 감싸듯이 표현하였습니다. 정선은 바로 여기서 흑(바위)과 백(안개) 그리고 강함(바위)과 부드러움(안개)이라는 음양의 대비로 해석하여 조형화하였습니다.

 

▲ 겸재 정선이 내연산의 비경을 담아 그린 진경산수화 `고사의송관란도`


중국풍 산수화와 분명히 달라

정선의 산수화를 `실경`이라 하지 않고 `진경`이라 부르는 것도 외형적 사실 보다는 작가의 내면적 주관을 더욱 중시해 표현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참(眞)`은 `거짓(假)`의 상대개념입니다. 즉 중국의 산수를 `거짓(假)`으로 보고, 우리나라의 산수를 `참(眞)`으로 본 것입니다. `진경`이란 중국의 `거짓 산수`가 아닌 우리나라의 `참 산수`를 그린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사실적`이라는 말은 `참(眞)`이란 뜻으로, 오늘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사실화와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겸재의 산수화는 중국의 산천이 아닌 우리나라의 진짜 산천을 그린다는 의미에서 `진경산수화`라 부릅니다. 겸재의 그림은 우리나라나 산천을 그리되 그 속에 있는 사물들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빼기도하고 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경`의 의미를 모르는 일부 비전문가들이 겸재의 `고사의송관란도` 속에 있는 소나무가 비하대에 실존한다면서 `겸재송`이라고 부릅니다. 겸재의 산수화는 우리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도 있지만 중국풍의 남종산수화도 있습니다. 진경산수화와 중국풍의 산수화는 분명히 다릅니다.

첫째 그림 속의 인물이 다릅니다. 중국풍에는 중국의 고사나 문인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입은 복장은 모두 중국 고대 의복입니다. 하지만 겸재의 진경산수화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조선의 선비들이 산수를 즐기고 있습니다. 둘째는 지명입니다. 진경산수화는 실경이기 때문에 `내연산삼용추`와 같이 실명이 기록됩니다. 그러나 중국풍은 실존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에 `만추`와 같이 계절과 관련되거나 고사 인물의 이름이 사용됩니다. `고사의송관란도`는 그림 옆에 `삼용추폭하 유연견남산`(三龍湫瀑下 悠然見南山, 삼용추폭포 아래서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본다)고 쓰여 있습니다. `유연견남산`은 겸재가 도연명의 시 `음주` 20수 중 제5수의 싯구를 차용한 것입니다. 즉 이 그림은 겸재가 삼용추폭포 아래에서 도연명과 같은 은자의 삶을 동경하며 그린 중국풍의 남종산수화입니다. 그림 속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 그림 속에 나오는 고사들의 복장과 머리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높은 인품을 가진 은자를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고사가 의지하고 있는 소나무 또한 실재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이나나 박사의 명쾌한 설명에 모두들 감탄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오늘 한 중앙지에 `억지스토리 전국문화관광 축제의 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지자체가 주최·주관하거나 지원하는 문화 사업에 억지스토리가 난무한다고 한다.

지원금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한 인사는 배점표에 스토리텔링 항목이 있으니 확실한 문헌 증거도 없는데 무리한 스토리를 만들어 넣고, 억지스러운 스토리텔링으로 덧칠한다고 지적했다.

포항 내연산의 뛰어난 절경과 겸재 정선이 남긴 내연산 그림들은 충분히 문화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겸재송`이라든지 청하의 내연산을 겸재 진경산수화의 발원지로 과잉 포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좀더 심도 깊은 학술연구를 통해 합당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지역 문화의 발굴이 될 것이다.

◇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 문화가이드:이나나 미술사학 박사

◇ 자전거 협찬:서일주(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

◇ 취재동행:박계현, 이명희, 이영숙, 이선덕, 김효은, 노경훈

◇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 두바퀴로 자전거 취재단 일행이 포항 청하면 비학산앞 포항시환경학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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