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
⑿ 포항 기계 성계리 고인돌

▲ 두바퀴로 자전거 취재단 일행이 최근 고인돌 유적지인 포항 기계면 성계리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와! 토요일이다”

두바퀴로의 지정 모임장소인 시립중앙아트홀 만남의 광장은 오늘도 문화탐방대원들의 반가운 미소로 가득하다. 이제 지역의 문화를 찾아가는 일이 익숙한 모습들이다.

오늘따라 박계현 (사)문화와시민 이사장은 더욱 상기되어 있다.

평소 영일만 일대의 고인돌에 대한 관심이 특별났기 때문이다. “여러분, 오늘은 HCN 최성필 PD가 함께 동행 합니다. 영일만 일대의 고인돌에 대한 다큐를 제작해 포항 고인돌의 가치를 전국에 알렸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함성과 함께 큰 박수로 화답하였다.

최성필 PD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서해안에서는 화순과 고창이 집단군을 이루며, 동해안에서는 영일만 일대를 중심으로 대거 분포합니다. 특히 오늘 탐방하는 기계면 일대의 고인돌은 칠포리 암각화 등과 함께 영일만 일대에 찬란한 고대문화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써 사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이때 해맞이 포럼 이명희씨가 한마디 한다. “우리는 너무나 우리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찬란했던 삼국문화 이전에 그 기반이 되었던 고대문화가 우리 포항 지역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은 포항의 자랑입니다.”

“맞아요. 우리는 우리지역의 문화에 너무 무관심 했던 것 같습니다.” 한마음 후원회 권기봉 회장도 한마디 거든다.

그렇다. 인근 경주에서 신라가 찬란한 삼국문화를 꽃피우기 이전에 영일만 일대에는 삼국문화의 기반이 되었던 큰 규모의 고대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계면 일대만 1백수십기… 청동기시대 흔적 뚜렷
고대 문화유적 귀중한 자산 방치돼 안타까움 더해

영일만 일대는 남방식 고인돌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고인돌은 의미 없는 하나의 거대한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돌덩이 아래에서 마제석검, 청동검 등 고대 생활도구가 발굴됨으로써 당시 지도자의 돌무덤으로 밝혀졌다.

고인돌은 돌을 괴어 만든 무덤이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석묘라고도 한다.

고인돌의 크기는 지도자의 권력과 힘의 크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큰 규모의 고대문화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인돌의 구조는 받침돌과 덮개돌로 되어 있다. 형식에 따라 북방식 · 남방식 · 개석식으로 구분된다. 북방식은 주로 북쪽에서 많이 발견된다. 4개 혹은 2개의 굄돌을 세운 뒤 평평한 덮개돌을 얹은 모양이 마치 탁자모양을 하고 있어서 `탁자식`이라고도 한다. 남방식은 몇 개의 밑돌을 놓고 덮개돌을 얹는다. 마치 바둑판과 같아 `바둑판식`이라고도 부른다. 개석식은 받침돌 없이 덮개돌을 얹은 형식이다. `무지석식`이라고도 한다. 성계리를 비롯한 기계일대의 고인돌은 대부분 남방식이다.

고인돌은 전 세계에 약 7만기가 있다. 한반도는 고인돌 왕국이라 할 만큼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인 4만기가 분포하며 크기와 규모도 세계 최대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지난 2000년 12월 종묘, 불국사 등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6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고대문화연구의 주요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두바퀴로 탐방단은 포항 시가지를 약간 벗어나 황금물결 일렁이는 넓은 들을 따라 기계면 성계리에 도착했다. 마을 풍경이 색다르다.

집안 담벼락 옆에서 호박 넝쿨을 덮어 쓴 고인돌, 장독대 옆에 놓여 있는 고인돌, 마을 길가에 서있는 고인돌, 고인돌과 고인돌 사이에 있는 집, 집과 집 사이에 있는 고인돌 등 마을이 커다란 돌덩이들 사이에 있는지, 커다란 돌덩이들 속에 마을이 있는지 구별이 안 간다. 고인돌과 생활을 같이하는 마을 풍경이 인상적이다.
 

`칠성바위`라 부르며 신성시

성계리 마을 안에만 해도 7기의 고인돌이 있다. 성계리는 원래 `칠성동`이라고 불렸다. 마을 사람들이 고인돌을 `칠성바위`라고 부르며 신성시한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성계리 고인돌은 타 지역에 비해 대부분 규모가 크고 거대하다. 최성필 PD의 안내를 따라 숲을 헤치며 풀 향기 가득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오르는 길에서도 4,5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산 정상에 굄돌을 한 고인돌이 위엄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인적 끊긴 노당재에 고인돌이 지키고 있었다.

성계리 산중턱에 세워진 이 고인돌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원형 보존이 잘된 고인돌이다. 또 눕히지 않고 세워 둔 유일한 고인돌이다. 안강과 기계를 연결하는 노당재 길목 중간지점에 세워짐으로써 더욱 웅장하고 위엄이 돋보인다. 워낙 커서 굄돌의 크기만 해도 일반 고인돌 크기이다. 수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꿋꿋이 서있는 고인돌을 보니 당시 고대인들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과 운반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두바퀴로 자전거 취재단 일행이 최근 고인돌 유적지인 포항 기계면 성계리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눕히지 않고 세워 둔 유일한 고인돌인 포항 기계면 성계리 고인돌

고인돌 유적지 관광자원화 해야

강화 고인돌 문화축제는 벌써 14회를 이어가고 있다. 채석·운반·가공·축조 등 고인돌을 세우기 위한 과정을 재연하는 행사를 통해 강화의 고대 문화유산으로 관광자원화 시켰다. 순천은 고인돌 공원을 만들어 선사시대 보존 교육장과 관광지를 조성했다.

이에 반해 우리 포항 일대의 고인돌은 그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존재에도 관심이 없다.

포항은 성계리만 해도 수십 기의 고인돌이 있고, 기계에는 100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다. 그러나 표지하나 없이 방치된 현실이 유감스럽다. 강화·고창순천은 이보다도 적은 수의 고인돌을 보유하고도 고인돌을 관광자원화 하는데 성공했다. 영일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분포지역이다. 기계면 일대의 고인돌은 칠포리 암각화 등과 더불어 고대문화 박물관으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

경주에 신라의 불교문화가 있고, 안동에 조선의 유교문화가 있다면, 포항에는 고대문화가 있다.

◇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 문화가이드:최성필(HCN 피디),
◇자전거 협찬:서일주(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
◇청소년 기자단:최요한, 신창민, 장혜원, 이나영,
◇ 취재동행:권기봉, 정경식, 이길호, 김영미, 진효승, 김명헌, 김병수, 박창교, 임채완, 장미향, 김하늘, 권태성, 이석호(한마음 후원회), 박계현, 이명희, 이영숙, 장재향, 이선덕, 김미숙, 이주형, 김효은, 노경훈, 최성룡
◇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 눕히지 않고 세워 둔 유일한 고인돌인 포항 기계면 성계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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