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인간은 신석기시대부터 가축을 길러왔다. 가축이란 집에서 기르다가 그러는 사이에 정이 든 짐승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정든 짐승이 아니라 대량으로 판매하는 산업생산물로 바뀌고 있다. 살찌워서 양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해 효율적으로 가축을 사육하는 장소를 `공장식 가축 농장`이라 부른다. 이때의 가축은 생명체가 아니라 부의 축적을 위한 `상품`일 뿐이다.

가축은 많은 이윤을 위하여 비좁은 공간에서 밀집시켜서 키운다. 여기에 갖가지 동물약품을 사용하고 단일품종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소위 `집중적인 가축시설`이 많다. 대규모 공장식 축산 농장은 전체의 2%정도 이지만 시장으로 출하되는 비율은 80%가 넘는다고 한다.

공장식 축산업이란 모든 과정을 수직적 통합으로 계열화한 거대 축산기업들을 말한다. 이곳은 사료생산에서 수의약품, 종축, 사육, 도축 및 가공포장, 유통 판매에 이르기 까지 한 곳에서 전체를 통제할 수 있게 조직됐다.

공장식 축산 방식은 엄청난 항생제, 살충제, 소독약이 필요하고 대량의 폐기물은 환경을 오염시킨다. 이런 공장식 축산업으로 많은 이윤을 남기려다가 그만 동물을 학대하고 괴롭히게 돼서 드디어는 가축의 행복과 권리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연구에 따르면 동물들도 인간과 똑같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정과 심리적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가축들이 이제는 물건 취급을 받는다. 가축은 좁고 더러운 곳에서 키우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다. 근래에 있었던 세균의 감염, 광우병, 조류 독감 등과 같은 질병의 유행도 언론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있었던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1천여만 마리가 생매장을 당했다. 거기서 우리는 인간의 잔혹성을 확인했다. `우리도 저렇게 잔혹할 수 있구나` 파묻던 사람 중에는 그 후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자들도 있었다. 공장식 축산업은 윤리적 측면에서도 동물의 자유를 억압한다.

60년 전 어린 시절에 우리는 배고파 보았다. 가축도 배고픔은 동일하게 느낀다. 갈증이나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고통이나 상처 없이 움직일 수 있다가 조용히 죽을 수 있다면 생명들은 기뻐서 이 지상을 천국으로 여길 것이다.

원시시대의 조상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먹거리를 찾는 것에 소비했으나 근래에는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좀 더 먹음직하고 보기에 좋은 육식을 원한다. 마블링이 좋은 꽃등심, 고소한 삼겹살, 향긋한 치킨의 생산 이면에는 유전자가 조작된 사료를 화학비료로 키워서 먹인다. 소, 돼지, 닭들은 비좁은 축사에서 고통스럽게 자라고 있으나 소비자는 모르고 있다. 산업계는 마치 가축들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건강하게 사육되는 것 같이 광고하지만 빛깔이 연한 고기를 위해 조그마한 곳에서 송아지가 빈혈이 되도록 사육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갓 태어난 돼지의 이빨과 꼬리 자른다. 사료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병아리 부리를 태어나면 잘라내고 닭은 A4용지만한 공간에서 40일 정도 살다가 도축된다.

광우병은 공장식 축산 방식에 저항하는 동물들의 역습이며 생매장된 매몰 구덩이에서 밀려나온 핏물은 이 세상이 생지옥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축보호도 환경 운동의 하나이다.

가축의 복지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빈번히 외식하는 습관, 카트에 물건을 잔뜩 실어 나르는 쇼핑 등은 육류 소비를 늘리고 동물의 복지를 악화시킨다. 축산업은 사회에 공헌하는 산업이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업은 중단돼야 가축이 행복하고 인간이 건강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