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재영 시인

소나무는 푸르다. 사철 푸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당찬 기상을 이야기할 때 소나무를 든다.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은 600여 년의 수령(樹齡)을 가진 소나무다. 세조가 그곳을 지나다`연 걸린다`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치켜들어 예를 갖추었다고 `정이품`이란 벼슬을 내렸다.

상징성이야 어떻든 사람도 오르기 힘든 벼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아주 귀하게 여겼다는 이야기다. 한옥 지을 때 중요 목재 또한 소나무를 사용했다.

특히 울진군 서면 소광리에선 궁궐에서 쓸 소나무를 재배했다. 여의도 면적의 8배나 되는 소광리 숲 속에는 이삼백여 년 된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경상북도 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운문사 처진 소나무(180호), 문경 농암면의 반송(292호), 상주 화서면의 반송(293호),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294호) 등의 노송(松)들은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

추석날 솔 향 가득한 송편도 솔잎을 사용했고, 가을이면 소나무는 송이버섯을 우리에게 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국보 180호 `세한도`에 얽힌 이야기도 소나무가 등장한다.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된 지 5년 되는 해였다. 김정희는 제자 이상적에게 중국에 가면 만학집과 대운산방문고란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책을 받았는데 황종경세문편까지 보내줬다. 귀한 책을 받은 김정희는 고마움을 편지 한 통에 담아 이상적에게 보냈다. 그게 바로 `세한도`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

겨울이 돼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는 말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소나무는 굳은 절개, 푸르름, 기상. 신의를 상징하며 우리 민족의 예술 작품 곳곳에 등장했다. 십장생(十長生)에도 소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땅의 소나무가 위태롭다.

적군이 쳐들어와 포격을 가하듯 소나무를 공격하는 재선충의 활약은 곳곳의 소나무를 박멸시킬 정도로 기세등등하다.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단풍처럼 산을 물들이고 있는 소나무 주검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제주지역은 이미 문화재 구역까지 재선충이 번져 그것을 베어내는데만 수십억원의 경비를 들여야 한다고 한다. 재선충 피해는 우리 고장뿐만 아니라 지금 한창 북상중이다.

재선충은 지난 1988년 부산에서 발견되었다. 부산 금정구 금정동물원에 일본 원숭이를 들여오는데 재선충이 감염된 소나무로 만들어진 우리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재선충의 피해로 대부분의 산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게 됐다. 중국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황산을 지키기 위해 주위 폭 4km씩 모든 소나무를 베어버리기도 했다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라는 곤충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몸에 기생하여 다른 나무로 이동한다.

이러한 피해가 확산되지 않기 위해서는 재선충 피해 방지에 전국민이 동참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해야 한다. 아직도 국민은 재선충에 대해 잘 모른다.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으로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었다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를 빨리 처리하고 전염시키는 것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몇 년 전 소 구제역이 발생했을 당시 살처분한 것처럼 확산 방지를 위한 발 빠른 행정력이 동원돼야 한다.

삼천리강산에 소나무가 없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 민족의 기상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철 푸른 소나무를 더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