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석수 신부·성요셉재활원 상임이사

스티븐 코비는 `신뢰의 속도`에서 “행동으로 일으킨 문제는 말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그에 상응한 행동을 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적절한 사례는 독일에서 볼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는 나치정권에 협력을 한 행동에 대한 반성을 볼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1933년 최초로 세워진 다카우 수용소는 과거의 행위에 대한 독일의 진정성을 볼 수 있다. 총 30개국 이상 20만명을 수감시켰고 그 가운데 1/3이상은 유대인이었다. 그 가운데 2만5천여명 이상을 죽였던 곳이다. 수용소에서 약간 벗어난 지역에 연이은 집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탈의실 가스실 마침내 시신을 불태운 곳이다.

과거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 그곳은 말이 필요 없는 교육장이었다. 지금도 독일 육군사관학교생도에게는 필수코스요 어린 학생들을 끊임없이 견학하게 함으로써 나치정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었다. 아울러 나치정권에 부역을 하였던 회사 가운데 벤츠사는 강제노동을 했음을 사죄하고 희생자 및 가족에게 2천만 마르크를 배상하였다. 폭스바겐과 알리안츠 등은 100억 마르크를 강제노동 배상기금을 조성함으로써 그 기업의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은 상쇄됐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기업과 정부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등을 세계 문화유산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독일과 독일의 기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준 곳이며 어떤 아픔을 품고 있는지 살피지 못하는 자신의 생각에만 빠진 행위라 할 것이다. 외교부 한충희 문화외교국장은 “이웃국가 아픔이 있는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은 유산 등재 원칙과 정신에 맞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일본 제국시대 고향의 가까운 친인척들이 이곳에서 징용생활을 하였노라고 했다. 백번 양보하여 그곳에 강제 징용 당한 이들에 대한 반성과 그들의 이름을 독일의 경우처럼 한켠에 전시할 용의는 있는지 묻고 싶다.

얼마 전 메르켈 총리는 다카우를 방문하여 헌화하며 고개를 숙인 모습이 일면을 장식하였던 기사를 본적 있었다. 그곳 현장에서 일본인 방문객들이 있었다. 그들은 역사를 어떻게 배웠고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떤 생각을 품고 갈지 궁금하였다. 메르켈 총리의 행위에는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하여 헌화를 하고 무릎을 꿇어 사죄를 한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의 진정성이 이어짐을 본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인들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 코이즈미 전 수상이 “통절한 반성과 사죄”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의 행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다음 정권에서는 늘 그 정도의 언급만 있을 뿐 행위는 없었다. 일본의 정치인 가운데 독일의 빌리 브란트 같은 인물은 언제쯤 기대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진지하게 현재와 과거를 정립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행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행동으로 일으킨 문제는 행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리더의 첫 글자는 L이다. 이를 경청(listen)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도자의 첫째 역할은 듣는 것이다. 일본의 지식인 1천300명이 “두 가지(독도와 센카쿠) 문제는 영토를 둘러싼 갈등처럼 보이지만 모두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란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침략의 역사를 잊고서 그 위에 평화니 인권을 더 높이 외쳐도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뉴턴은 “사람들은 벽은 많이 쌓는데 다리는 많이 놓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하는 고리가 많이 만들어질 때 아름다운 사회, 세상이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민간차원의 교류를 확장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모든 차원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한 개인적 차원의 시작과 아울러 사회적 차원 등으로 생각과 사고의 틀을 탁월하게 확장돼야 다른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발생시킨 당시의 사고 수준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