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명 시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볼일이 있어 방문했다. 유선방송 건이라 필요한 부분에 대해 사무를 끝내고 샤워부스의 문이 고장난 것에 대해 문의했다. 그런데 고장 나서 혼자 고민했던 것을 이미 다른 세대에서는 사무소를 통해 쉽게 고쳤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젠 부품을 구할 수도 없어서 고치기 어렵다는 것도. 이 얼마나 식자우환인가. 무언가 안다고 할 수 있다고 혼자서 낑낑대며 고장난 것을 고쳐 나온 시간들을 생각해보니 바보처럼 여겨졌다.

이 일로 내가 잘 하는 것도 있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란 걸 알게 됐다. 더구나 정교해지고 정밀해진 구조를 가진 현대기계들은 이제 전문가가 아니면 만질 수도 없는 것이 됐다. 옛날에는 도구를 직접 손수 만들기도 하고 손수 고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가버린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혼자 고쳐보겠다고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더욱 망가트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장 나면 손수 고쳐보겠다는 이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숨어있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같은 무모한 도전으로 인해 나의 컴퓨터 실력이 한 발 두 발 나아갔던 것은 아닐까도 짐작도 해본다. 그러나 내가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그것도 오기로 달려 들어봐야 힘과 돈만 더 들이고 후회하는 일이 많을 것은 당연하다.

지난 여름 어찌나 더웠던지 결국 냉장고가 고장나버렸다. 저것도 더위를 먹었거니 생각하고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해봐도 휴일이라 전화도 받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알고있는 서비스 직원에게 부탁해보았으나 아마 업계의 룰 때문에 선뜻 와주질 않고 회피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저걸 고칠 수도 없는 노릇, 다음 날을 기다렸다. 얼음이 녹아 흘러내리고 음식이 상해서 버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전문가가 오더니 냉장고 뒤편에 팬이 돌아가는 부분에 이물질을 제거하고는 정상 가동시키는 것이 아닌가? 저건 나도 알았으면 할 수 있었던 일인데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래도 전문가는 전문가이다. 고장난 원인을 바로 아는 것이 그의 특별함이니 말이다.

한 자동차를 끌고 수리공에게 와서 말했다. “이 차가 좌·우회전을 할 때 덜컹덜컹하며 소리가 납니다”수리공은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 차를 몰아보니 회전을 할 때마다 정말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수리공은 차를 세우고 뒷 트렁크를 열어보고는 미소를 띠었다. 금방 원인을 발견한 것이었다. 차 주인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트렁크에서 볼링공을 빼세요” 우스개이지만 우리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일 때가 많다. 전원을 연결하지 않고 작동이 안된다며 고민할 때 자동차 기어를 중립에 놓고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고민할 때라든지 가스를 잠궈놓고 가스렌지에 불이 켜지지 않는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고장들은 그래도 결국은 해결할 수 있는 고장들이다. 결국은 해결하지 못하는 고장도 있다. 생명이 낡아지고 병드는 것을 고장이라고 하진 않는다. 그러나 쉽게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고장난 기계처럼 폐기된다. 성경에는 `겉사람(육체)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영)은 날로 새롭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미 낡거나 고장날 수 밖에 없는 육체에 관심을 갖지 말고 영원한 가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더 나아가서 고장 나거나 결국은 폐기될 기계와 인생의 수많은 시스템이 중요하긴 하겠지만 더 나은 가치인 믿음과 사랑과 진리에 더 중심을 두라는 이야기이다. 병원에서 몸을 건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병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영적가치에 더 눈을 떠라`라고 외친다면 아마 바보라든가 분노를 살지도 모를 일이다. 병을 고치는데 신경쓰지 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과 정신을 더 귀중히여기고 진리에 중심을 두다보면 오히려 그 몸의 고장이 스르르 고쳐지든지 아니면 그냥 문제없는 것으로 여겨지든지 하게 될 것이란 그런 뜻을 가진 말씀이다.

오늘도 고장난 샤워부스에서 몸을 씻고 출근을 했다. 무너져 비스듬히 세워놓은 유리문이 오히려 정겹게 여겨졌다. 정신의 문제인듯하다. `그래도 고쳐야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반대편 문을 이용해서 닫아놓고 샤워를 했다. 몸의 때가 비누거품과 함께 씻겨나간다. 저 물에 절대로 씻겨나가지 않을 생각들 정신들 그 가치들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