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의 달인` 구효서 지음 문학동네 펴냄, 240쪽

올해로 등단 26년째,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디`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구효서의 신작 소설집 `별명의 달인`이 출간됐다. 삶이 깊어갈수록 소설세계 또한 다채로워진 대표적 전업작가,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 신비주의와 낭만주의 등 다양한 문체와 알레고리로 독자를 꾸준히 매혹해온 그다.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을 잇는 여덟번째 소설집 `별명의 달인`은 앞선 두 소설집에서 천착한 탄생과 소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삶의 미묘함 그 자체를 조망한다.

죽음에 대한 사유 끝에 따라붙기 마련인 허무의식이 이번 소설집 곳곳에 스민 것은 그러므로 놀라운 일이 아닐 터, 그것이 삶에 대한 포기나 체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이 소설집의 빛나는 힘이 있다. 요컨대 삶은 유한하며 우리는 삶의 의미를 끝내 모를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까닭에 끊임없이 재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표제작 `별명의 달인`의 화자는 학창 시절 자신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던 친구를 찾아간다. “당신은 제대로 아는 게 없어”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던 화자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난 뒤였다. 화자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내·외면적 특징을 놀랄 만큼 잘 찾아내 `별명의 달인`이라 여겨진 옛 친구. 그 친구라면 아내가 외치던 말의 뜻을 알 것 같았고 자신에게 무엇인가 말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를 만나 지난날을 회상하던 화자는 옛 친구에게 별명 짓기란 재미가 아닌 공포와 고통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음을 떠올린다.

친구들의 반감을 사던 옛 친구의 “너스레와 공연한 자존심” 뒤에는 타인에 대한 빈틈없는 파악이 불가능한 데서 오는 두려움이 있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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