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명 시인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예능프로에 소개된 초등학생의 시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무너져가는 것에 대한 징표인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농경사회, 산업사회였던 얼마 전 까지는 아버지와 남성은 권위가 있고 가부장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농경사회에서는 남성의 근력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힘이었으니 그럴만도하다. 그것은 산업사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지만 숙련이라고 하는 가치에서 여성이나 청소년들도 이에 못지 않는 자질이 발견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 수많은 도시 행을 택한 소년 소녀들을 생각해보라. 방직공장이나 플라스틱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들의 귀향은 금의환향은 아니어도 양손에 선물꾸러미가 들려있기도 했던 것이다. 남성보다 여성인력이 특별한 생산력을 가지게 된 것은 기계의 덕분으로 힘보다는 점차 정교한 숙련도가 더 필요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더욱이 지식정보화사회를 넘어 후기지식정보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요즈음 아버지-남성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가고 있다. 전화와 텔레비전에 익숙한 장점을 살려 여성과 소년들이 고소득자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들을 신지식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히려 남성사회의 비리구조와 문어발식으로 확장만 하다가 부실해진 기업들이 결국 남성위주의 가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고 대안으로 여성가치인 공감과 투명 정직한 경영과 질서가 요구되고 있다.

은퇴한 남성에게 찾아온 모습도 이와 같아서 젊었던 시절 아내와 가족에게 잘못했던 것을 노년에 부메랑으로 맞게 된 것을 종종 본다. 선장으로 외국으로만 다니다 가족들을 돌보지 못했던 K씨는 은퇴한 뒤에 가족들에게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루는 목욕탕에 같이 가자는 아내를 따라 목욕하고 나오니 아내가 사라졌다는 것. 심지어 아파트에 돌아오니 세간도 없어지고 이사를 가버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시집간 딸에게 전화했더니 아버지 편은 들어주지 않고 `오죽했으면 엄마가 그랬겠느냐? `는 반응이었다. 결국 오랜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셋방을 얻어 근근이 생활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은퇴한 남자에게 필요한 것 다섯 가지는?` 에 대한 답은 `여자, 와이프, 처, 마누라, 안사람`이란다. 누군가 우스개로 지어냈겠지만 여운이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질문이 더 의미심장하다. `나이 든 여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는?`에 대한 정답은 `돈, 건강, 딸, 친구, 강아지`란다. 정답 속에 남편은 없다. `남편은 열심히 일하다가 돈만 남기고 빨리 저세상으로 가면 좋겠다`란 노골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농담이라 씁쓸하지만 그만큼 남성의 시대는 가고 여성의 시대가 왔다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예레미야의 예언에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구절이 있다. 이제껏 남성이 포용하고 여성을 안아주던 시대였다면 새로운 시대는 여성이 남성을 포용하고 안아주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배타적 지배와 독점적 소유와 약육강식의 공격 등으로 상징되었던 강한 남성의 시대가 가고, 상호 이해와 공동체적 협력을 모색하지 않으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시대 주어진 예언의 말씀이다.

사실로 여성이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여학생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고 성적도 남학생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여성이 경제력을 가지고 구매 결정의 80%를 차지하는 의사결정권자가 되었다. 그래서 여성의 비중을 생각지 않고는 비즈니스를 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렇게 약진하는 여성을 `알파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시대의 트렌드는 야망이 아니라 도덕이 중요해졌으며 기능보다 감성적 하이터치 서비스가 눈길을 끈다. 여성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남성의 시대에도 여성은 그 상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듯이 여성의 시대에 남성 역시 그 상대적 위치에서 중요하다. 그러므로 여성의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는 남성우월, 여성우월의 차원을 넘어선 이야기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여성성을 더욱 필요로 하는데 곳곳에 진통이 있다. 그것이 삼식이 종간나세끼나 다른 농담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여성들이 대를이어 지도자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