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사관 인근 등서 시위대 진압, 회담 기대 물거품
정부 명분쌓고 외부 탓 돌리기

▲ 11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탁심광장에서 시위대들이 진압경찰이 쏘아대는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날 터키 경찰이 반정부 시위의 중심인 탁심광장으로 진입, 시위대를 인근 공원으로 쫓아내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되는 양상이다. /AP=연합뉴스

터키 반정부 시위의 중심인 이스탄불 탁심광장에 경찰이 진입한 것을 계기로 사태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스탄불뿐 아니라 수도 앙카라 주재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대 대표들과 만나기로 해 수습국면으로 기우는 듯했으나 11일(현지시간) 경찰의 기습진압으로 이번 사태가 대화로 해결되기에는 어려운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도 `이자율 로비`(interest rate lobbby)와 `마지널 그룹`(marginal group) 등 기존의 발언을 되풀이하면서 사태 악화의 원인을 외부 탓으로 돌렸다. 아울러 `민주적 요구에는 열려 있으나 불법은 엄단한다`는 명분을 재차 강조했다.

AFP 통신은 불어난 시위대 수만명이 “에르도안은 사임하라”, “저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탁심광장 밤늦게까지 대규모 집회

美대사관 근처서도 경찰이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이번 시위의 상징인 탁심광장에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면서 진입해 온종일 격렬한 충돌을 빚어 부상자가 속출했다. 지난 1일 철수 이후 열흘 만에 경찰이 기습 진압에 나서자 시위대는 시민에게 오후 7시에 광장으로 모여 지지해달라고 요청했으며 밤이 되자 시위대에 가세한 시민이 급격히 늘어났다.

시위대는 광장 곳곳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졌으며 경찰이 최루탄으로 대응하면서 대규모 집회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다만 평일 오후에 갑자기 일어난 사태라는 점 등에 따라 이날 밤 시위대는 지난 주말보다 규모는 적었다. 그러나 앙카라에 있는 미국 대사관 인근에도 5천여명이 몰려들었다.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탄과 물대포 등을 쏴댔고 시위대 일부는 돌을 던지기도 했다.

익명의 자원봉사자는 이날 시위 사태로 25명이 병원에 이송됐으며 여러 명이 화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시위대들에게 최루탄을 쏘는 것으로 사태를 해결할수는 없다”며 경찰 진압을 비난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터키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로 현재까지 경찰 1명을 포함해 모두 4명이 사망했고 시위대 5천여명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이번 진압으로 12일 예정된 총리와 시위대 일부 그룹 대표의 회담에 거는 기대도 약해졌다.

정부는 예정대로 만나겠다고 밝혔으나 시위대 대표가 참석할지 불투명하며 회담에서 획기적인 합의도 나오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탁심 진압은 `마지널그룹` 끌어내기”

경찰의 진압은 실제 광장에서 시위대를 끌어내려는 목적보다는 `마지널 그룹`(marginal group)의 과격행동을 끌어내 진압의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대에 테러리스트가 있다”고 언급할 때마다 쓰는 `마지널 그룹`은 공산당과 노동당, 미국대사관에서 폭탄테러를 한 `혁명민족해방전선`(DHKP-C) 등을 지칭한다. 시위대를 해산하려 했다면 새벽에 대규모 경력을 투입해 속전속결하는 것이 피해도 줄이는 방법이지만 경찰은 이날 오전 진입 계획을 밝혔고 오후까지 소극적인 대응에 그쳤다. 정부는 이날 진압이 광장에 걸린 마지널 그룹과 불법단체가 내건 현수막을 제거하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날 방송으로 생중계된 현장을 보면 일부 과격 시위대는 화염병과 돌 등을 던지고 연막탄을 쏘는 모습이 더 드러나 경찰이 마지널 그룹의 과격 행동을 유발했다는 추측이 나왔다. 시위대 내부에서는 화염병을 던진 시위대가 무전기를 차고 있었다며 사복경찰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스탄불=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