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대통령과 악수할 때, 손을 가볍게 내밀어라. 힘주어 잡지 마라. 그냥 악수하는 시늉만 하라는 거다. 처음으로 대통령과 악수했을 때의 경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유권자들과 악수를 너무 많이 해서 손에 붕대를 감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니 대통령의 손을 꼭 잡지 말라고 다그치던 수행원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만난 그 기쁨과 감격을 간직하려는 국민의 간절함을 4천만명중의 한 명으로 치부하고 건성으로 대하려는 대통령도 야속했다.

그런 대통령을 너무 가볍게 대했다는 인사가 나타나 세계 매스컴의 비난을 사고 있다.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 겸 에너지 벤처기업 테라파워 회장이 한 쪽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한 때문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세계 각국 정상이나 국제기구 수장을 만날 때도 더러 그런 식으로 인사를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서 우리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대한 것은 국제적 비난을 사고도 남을 만하다.

우리나라가 괜히 동방예의지국인가. 유별 예의를 따진다. 예의에서는 경력이나 능력보다 앞서는 것이 나이다. 우리는 특히 상대가 서비스업 종사자일 경우 나이가 적으면 하대하고 본다. 경로당에 가서도 나이가 적으면 담배 심부름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문화다.

이번엔 비행기안을 경로당이나 회사 중역 사무실로 착각한 인사가 나타났다. 포스코에너지의 상무가 미국 로스엔젤리스로 가는 국적기에서 기내식을 트집 잡아 여승무원을 폭행했다고 인터넷이 들끓었다. 그의 신사답지 못한 행동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사표를 냈고 또 처리됐다. 정준양 그룹 총수가 사과까지 했다.

그는 비행기를 탔을 때부터 기내 서비스에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비지니스석이었고 인천공항에서 LA까지는 14시간 정도 걸리는 피곤하고 먼 항로다. 비행기라는 특정 공간에서 10여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을 당사자의 해명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냥 승무원 보고만으로 여론재판 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이 고작 한 끼 라면 때문에 사직이라니, 행위 치고는 너무 심한 대가 아닌가 동정심도 생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승무원의 서비스에 불만을 가졌고 단단히 화가 나 있었던 듯하다. 빈 자리가 있었고 그는 멋대로 움직이는 대신 승무원에게 옮겨도 되느냐고 정중히 물었는데 승무원의 반응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일반석의 갑절이나 되는 요금을 물고 특별대우받는 비지니스석을 담당하는 승무원의 업무 처리도 문제지만 이렇게 근무 중 습득한 개인 신상을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항공사 처사도 불만스럽다.

어쨌든 그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대부분 그렇게 믿고 있다) 여승무원을 사무실 비서(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 쯤으로 보았던 것일까.

이웃에 작은 애완견을 길러온 집에서 뒤늦게 아들을 얻었다.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강아지로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처음 아들이 어렸을 때는 몰랐었는데 아들이 차츰 자라면서 터줏대감 강아지와 서열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강아지는 점점 자라나는 이 아들에게만은 절대 자신의 지위를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고 주인은 귀띔했다.

아래 위 서열을 분명히 하는 개로서는 자신의 위치를 위태롭게 만드는 아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개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절대 대드는 법이 없다. 그러나 (개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만만한 상대가 도전한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용납하지 않는 것이 개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을 개에 비유하는 욕이 나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