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원 국회의원

신문을 읽을 때마다 왜 이렇게 큰 종이에 인쇄하는지 궁금했었다. 큰 종이에 인쇄하면 돈이 적게 들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신문이 나올 초창기인 1712년 무렵 영국의 신문사들은 신문의 페이지 수에 따라 세금을 내야 했다. 그래서 신문사들은 페이지 수를 줄이려고 지금과 같은 크기의 종이를 선택했다. 1855년에 이르러 세금이 없어졌고, 큰 종이에 신문을 인쇄하려면 엄청난 추가 비용이 드는데도 신문사들은 기존의 판형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메트로`라는 무료 신문이 발행된 후 2003년에야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의 `타블로이드판`이 처음 발행되었다. 이 신문의 판매량이 급등하자 `타임즈`와 `가디언`도 새로운 변화에 합세해 작은 신문을 찍어 매출이 크게 신장했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기존의 신문 크기를 바꾸지 못한 걸까? 정말로 그동안 아무도 작은 종이에 인쇄하려는 생각을 못했을까?

물론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은 많았다. “신문 크기를 줄여서 읽기 편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라는 제안은 꾸준했지만 늘 외면당했다. 독자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타블로이드판 신문은 독자로부터 대환영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타성에 젖어 다수의 선택을 무조건 추종하는 경우가 많다. 익숙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그래서 힘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십수년 전 필자가 변호사로 일할 때의 경험담이다. 당시만 해도 변호사가 구속된 형사사건의 변호를 맡으면 구속된 피의자를 구치소에서 한두번 만나 얘기를 듣고, 수사기록을 통해 사건내용을 파악한 후 재판에 임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 과정에 구치소에 구금된 피의자와는 두세 번 정도 만나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무조건 구치소에 가서 피의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또 수요일에는 사건 진행과정과 의뢰인이 궁금해 하는 사안을 편지로 정리해서 구치소의 이메일로 보내 목요일 오전에 이메일 편지가 의뢰인에게 도달되도록 했다. 결국 나의 의뢰인은 매주 월요일 오전에 자신의 변호인을 구치소 안에서 만나 애로사항을 얘기했고, 목요일에는 다시 변호인의 편지를 받았다.

사건을 맡긴 의뢰인들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때로 원하지 않던 결과가 나오더라도 의뢰인들은 “할만큼 했다. 수고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나 혼자의 힘으로 변화를 가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으나, 사람들과 함께 현상을 바꾸는 것은 집단적인 타성 때문에 무척 어렵다. 익숙한 것에서 낯선 세상으로 들어가는 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저항이 따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타성을 깨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와 발전은 사실상 어려운 것이다.

정치 일선에 있는 필자는 사람들 앞에 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변화를 얘기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변화의 싹을 틔우기 위함이다. 생각이 변해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변하고, 지역이 변해야 내 나라가 변한다.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나라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지역구 사무실의 외벽 현수막이 봄바람에 찢어져 새로 교체하게 되었다. 나는 현수막을 제작하는 후배에게 외벽의 문구를 다음과 같이 주문해서 걸게 했다.

`아내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겠습니다. 청년정신(靑年情神)! 국회의원 김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