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 ⑵ 정약용 유배지, 장기-물날치와 모포 해수욕장

▲ 두바퀴路 문화취재단이 최근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인 포항시 장기면을 답사했다.

“유배지는 충신에게 외로움과 고통의 공간입니다. 권력의 영고를 되새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충신들의 얼과 엄청난 문화적 가치가 숨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문화와시민 박계현 이사장은 말을 잇는다. “우리 포항에도 조선 최고 학자들의 유배지가 있습니다. 그곳의 가치를 살피기 위해 오늘은 장기면을 탐방합니다.” 따스한 봄날이었다. 약간의 미풍은 있었지만, 하늘에서 쨍쨍 내리 쬐는 햇살은 어깨에 걸친 외투를 부끄럽게 했다. 흥겨운 자전거의 행렬은 문화와시민의 노란 깃발을 휘날리며 목적지로 향했다. 마치 E. A. 게스트(Edgar Albert Guest)의 `깃발`을 연상케 했다.

장기,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 등 17명 귀양살이
국내 유일한 단청재료 `뇌록` 산지로도 유명

작고 작은 나의 일곱자 몸 / 사방 한 길 방에 누울 수 있네 / 아침에 일어나다 머리를 찧지만 / 밤에 쓰러지면 무릎은 펼 수 있다네

향토사학자 금낙두 선생 만나

먼저 향토사학자 금낙두 선생(73·전 장기중학교 교장)을 방문했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길 9에 위치한 장기 충효관 이었다. 그곳에는 노인대학이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기와지붕으로 된 1층 건물 충효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20여명의 동행취재단이 자리를 갖추자 하얀 백발의 금낙두 선생은 말을 이어갔다.

장기읍성, 척화비, 보석사, 봉화대, 모포줄, 우암과 다산, 뇌록지 등 장기면에 얽힌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장에서 옅은 녹색 돌맹이 몇 개를 내놓았다. 뇌록(碌)이라고 했다. 동행취재단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것이 바로 옛날 탱화를 그릴 때나 목조건물 단층작업 등에 사용했던 천연 안료입니다. 뇌록은 목조건물에 벌레가 생기거나 부식, 화재가 일어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사용했지요.”

뇌록의 국내 유일한 생산지가 바로 장기면 뇌성산 뇌록지란다.

“조선조 영건도감이나 동국여지승람에 창덕궁, 경희궁, 창경궁을 지을 때 경상도 장기면의 뇌록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금낙두 선생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끌끌차며 말을 이었다.

“포항시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수십 년째 문화재 지정에서 외면 받고 있어요….”

하지만 유배문화지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촉박했다. 우선 오늘 취재의 주된 목표인 다산 정약용의 시와 그 흔적을 찾아 떠났다. 다산의 시비는 장기초등학교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산 유배 200주년을 맞아 지난 2001년 장기초등학교에 사적비를 세웠습니다.” 취재를 지원한 이외국 장기면장의 설명이었다. 다산의 비는 장기지역을 형상화하여 포구의 둥근 이미지와 동해에 떠오르는 해를 나타냈다고 한다.

다산은 1801년 3월 신유박해로 장기에 유배되었다. 그것으로 정약용의 장기생활은 시작된다.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기 직전의 일이다. 깊은 산골이면서 어촌이기도 한 장기지역은 조선시대 유명한 귀양지였다. 다산이 유배 오기 전에도 1675년 우암 송시열이 4년6개월간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모두 17명의 학자들이 귀양살이를 했던 유배지였다.

220일 유배생활 130수 시 남겨

다산은 1801년 2월28일 유배의 길에 올랐다. 한강 남쪽 사평을 거쳐, 탄금대와 조령, 문경과 함창을 지나 3월9일에 장기에 도착했다. 열흘간의 여정이었다.

그는 장기읍성 동문 밖에 있는 포교 성선봉(成善封)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성선봉의 집은 현재 장기초등학교 근처로 추정된다. 이곳은 이미 120여년전 우암 송시열이 귀양살이를 한 곳이기도 했다.

당시 다산의 시를 보면 성선봉의 집이 얼마나 열악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작고 작은 나의 일곱자 몸 / 사방 한 길 방에 누울 수 있네 / 아침에 일어나다 머리를 찧지만 / 밤에 쓰러지면 무릎은 펼 수 있다네.” <고시 27> “이곳에서 7개월 즉, 220일간 유배돼 있는 동안 다산은 130수의 시를 남겼습니다. 이틀에 한수 이상을 남긴 셈이지요.” 한문학자 신일권 박사가 덧붙였다. “이는 유배문화의 자산으로 남아 장기지역에서 오랫동안 빛을 볼 것이라 확신합니다.”

장기초등학교 옆 장기천(동천)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다산의 `유림만보(楡林漫步)`를 감상했다. 과거 천변에는 울창한 느릅나무 숲이 있었다고 한다.

시냇가 사립문 밖에서 지팡이 끌고 / 고운 모래 밟으며 천천히 걷네. / 육신은 병들어 허약해지고 / 옷자락은 바람결에 펄럭이네…./ 햇살은 하늘거리는 풀에 비치고 / 봄은 고요한 꽃에 깃들었네…. <유림만보> 장기는 다산의 첫 유배지였다. 당시 다산의 개인적 충격과 비통함은 매우 심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비통함을 다산은 시로써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봄날 오후 두바퀴의 페달을 밟으며 장기천 둑 위에서 또 한 편의 시 `제상(堤上):둑 위에서`를 감상했다.

“저녁 무렵 갠 날씨 따라 둑 위를 걷노라니 / 봄 산의 짙푸름이 참으로 마음에 흐뭇하다. / ... 우연히 흰 구름 만나면 혼자 멍하니 서 있고 / 문득 향기론 풀을 보곤 뜬 인생을 생각하네. / 산골에서 밭 갈며 숨어 살 날 언제인가 / 흰머리 털 오늘 아침에도 벌써 몇 가닥일세.” <제상(堤上)> 다산은 장기읍성의 동문에 올라 해돋이를 보는 것이 일과였다. 그리고 장기천을 따라 신창리 앞바다에 나가 어부들이 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오징어·백로·뇌록에 대한 시구도

그는 마을 사람들이 보리타작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담배농사를 짓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보리타작하는 것을 보았던 곳은 지금의 모포리(牟浦里)였을 것이다. 보리 `모(牟)`라는 지명답게 예부터 보리농사가 특히 잘 되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모포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산은 생전 처음으로 해녀의 물질을 구경했고, 오징어와 백로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기도 했다.

“오징어가 물가로 돌다가 / 갑자기 백로 그림자를 보았네 / 머리들고 백로에게 말하기를 / 그대 뜻을 나는 모르겠네 / 기왕에 고기를 잡아 먹으려면 /무슨 멋으로 청백한 체 하는가….”<오징어 노래> 향토사학자 금낙두 선생이 역설하는 `뇌록`에 대한 시구도 있었다.

“동산의 뇌록도 그 역시 진기하여 / 돌에 박힌 파란 줄기가 복신처럼 생겼구나 / 염국에서 공물로 그를 받지 않았기에 영롱의 종유혈이 천년 내내 계속이라네”<기성잡시> 이 시를 감상하며 두바퀴 지역문화 취재단은 뇌록지로 향했다. 약 20분 정도 올랐을까. 숨이 차오르고 온 몸에는 땀이 베어났다. 이윽고 목적지에 이르러 석성(石城)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돌무더기가 발견되었다. 그 사이에 옹달샘같은 약간의 물이 고여 있었다. 이곳이 바로 뇌록지라고 가리켰다. 샘이 너무 맑아 손으로 퍼서 한 모금 마시려니 “이 물에는 구리가 녹아 있어 마시면 안됩니다.”라고 금낙두 선생이 주의를 주었다.

다산의 싯구처럼, 암벽단층사이에 결을 따라 1~2cm 폭에 1m 정도의 녹색 띠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여겨지는 녹색의 빛깔을 띤 돌들이 무수히 많았다.

“가장 큰 뇌록을 찾은 사람에게 상을 드리겠습니다.”라는 이나나 박사의 말에 동행취재단은 돌맹이와 바윗틈 사이에 뇌록 조각을 찾기에 정신이 없었다.

바위에서 생수 나오는 날물치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신창리로 방향을 돌렸다. 다산이 보았던 신창리 생수암(날물치)의 감동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장기천에서 흘러 신창리 앞바다가 만나는 곳, 두 개의 바위가 바로 생수암이다.

바위에서 생수가 나온다고 장기사람들은 날물치(물이 나오는 곳)라고 부른다. “바위섬에 꽂혀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와 그 위에 떠오르는 해돋이가 장관이어서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촬영책임을 맡은 안성용 작가는 `이곳을 동해안의 가장 아름다운 일출지로 꼽는다`고 했다.

두바퀴로 취재단은 유배지의 혼과 숨결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장기읍성에 올라 다산과 함께 해돋이의 시상에 감동하고, 장기천을 따라 날물치 모포 앞바다까지 페달을 밟으며 충신의 얼을 느낀 것이다.

아쉬움에 고개를 돌리니, 다산이 거닐던 모포리 보리밭과 우암이 바라본 동해바다에도 어느덧 봄 노을이 덮고 있었다.

`두바퀴로 문화취재단`은 장기면에 너무나 많은 문화자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중 잘 알려지지 않은 다산 정약용 등의 유배문화와 뇌록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장기지역은 유배문화촌을 만들고, 뇌록지를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여름철 관광산업을 위해 신창리 물날치 해수욕장과 모포리 해수욕장 개발을 제안했다.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문화특강:금낙두 (향토사학자)

△한시감수:신일권 (한문학자)

△청소년기자단:강소리, 최민주, 방서영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동행취재단:박계현, 이선덕, 임희도, 김효은, 박종일, 곽진환, 천정룡, 이나나, 이영백, 이은경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