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TV에서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가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TV속 농촌은 일용이와 응삼이가 등장하는 김회장님 동네다. 기웅아재와 단비가 주말이면 경북지역 동네마다 찾아다니며 고향 소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도 그렇고 늙은 뽀빠이가 일요일 아침마다 전국의 농촌을 찾아 어르신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프로그램도 비슷하다.

이들이 찾아가서 연출하는 TV 프로에 등장하는 농촌은 낭만을 넘어 다분히 신파적이다. 반세기 전 배곯던 옛날로 되돌아가면 며느리를 학대하고 일만 시키는 가난한 시어머니가 있고 노름판과 술판을 전전하는 사내가 남편으로 등장한다. 그러고는 고생담이 이어지고 그 모진 세월 속에 훌륭하게 키워낸 자식들이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 해피엔딩이다.

그런 프로들이 직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에게 향수를 자극하거나 적어도 인생 2막을 농촌에서 시작하게 만드는 데 일정부분 기여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귀농 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트렌드가 되고 있다. 지난 한 해 전국적으로 도시에서 농촌 지역으로 귀농 귀촌한 사람은 2만7천가구 4만7천명. 40,50대가 60% 이상을 차지하면서 늙어가는 농촌에 약간의 새바람이 되기도 한다. 이중 귀농만도 1만1천여 가구의 1만9천657명이란다.

지방자치단체들마다 온갖 혜택과 지원 방안을 만들어 도시인들의 귀농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경북은 귀농 1번지라고 선전해댄다. 지난해만도 전국 귀농인구의 18.5%인 2천80가구 3천596명이 경북도로 와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늙어가는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귀농 행렬은 진행형이다. 귀농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힐링은 바로 농촌에서, 인생 2막은 농촌에서, 여유로운 인간다운 삶은 농촌에서 시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듯 보인다. 도시 생활에 적응 못한 사람이 가장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귀농에 성공한 50대 참외재배 농민의 체험담을 들었다. 귀농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몇 번 TV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고 그럴 때마다 나가서 귀농은 그냥 낭만이 아니라고 말해도 방송국에서는 “제발 좀 좋은 이야기, 폼 나는 이야기만 해 달라”고 하더란다. 그러나 농촌은 그런 곳이 아니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해 뜨기 전부터 들판에 나가 해가 빠진 이후까지 뼈 빠지게 일해도 그 수확은 도시의 수고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한 번 실패하면 그 피해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몸으로 느껴야 귀농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능력에 맞춰서 하고, 그리고 한껏 농땡이도 부려가면서 하루를 즐기고 잠자리에 든다고? 그런 농촌은 없단다. 그의 손은 더 이상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아니었다. 머리에 수건을 겹겹이 두른 그의 아내의 구릿빛 건강한 얼굴은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영락없는 결혼이주 여성으로 오인했을 뻔했다. 그만큼 몸으로 고생해서 오늘을 일구었다고 그는 말한다.

전원생활은 낭만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귀농 사이트와 블로그가 지천이고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TV에서 지천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또 우리 주위에서 그보다 더 많이,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귀농에서 실패한 사례이기도 하다.

환상만 갖고 농촌을 찾았다간 실망만 하고 되돌아온다. 더러는 1년을 버텨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4,5년을 살다가도 도회지로 되돌아오는 사례도 있다고 귀농교육 관련 공무원은 설명한다. 귀농이 되든 귀촌이 되든 농촌과 그 현실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TV 속의 낭만과 환상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귀농 열풍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결정,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다.`가봐야 안다`는 선배들의 경험담에 귀 기울일 일이다. 귀농, 낭만이 전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