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편집국장

수십 년만에 만난 어릴적 고향 친구가 건네준 명함에는 이학박사 XXX라고 뚜렷이 박혀 있었다. 그가 한의약계통에 종사한다고 들었는데 느닷없는 박사라서 그의 명함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구태여 박사 학위를 고집하는 이유를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사람을 상대로 신뢰를 줘야 하는 그의 사업을 위해서라는.

배우 김혜수씨와 방송인 김미화씨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을 놓고 세간의 뒷담화가 무성하다. 김혜수씨는 2001년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의 `연기자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관한 연구`에 대해 표절을 인정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미화씨는 2011년 같은 대학원의 석사논문 `연예인의 평판이 방송 연출자의 진행자 선정에 미치는 영향`의 표절 논란에 대해 “심각성을 간과했다”면서도 “트집잡기 위한 것”이라 항변했다. 이성한 경찰청장 후보자가 자신의 경찰학박사 학위 논문 표절에 대해 “사려깊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경찰청장이나 연예인의 논문 표절은 그들의 학위가 그들의 직무 수행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만큼 학자들의 논문 표절만큼 심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의 논문이 이론적 구축이나 학문적 성과를 증명하는 논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학위의 목적이 학문 자체보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되거나 신분 세탁용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석·박사 학위라는 것이 으레 그러려니 여겨온 우리 풍토다.

우리 사회에 학위 검증 열풍을 몰고 온 사람은 노무현 정권 말기의 신정아씨였다. 젊고 매력적인 그는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로 한순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스스로의 파멸뿐아니라 우리 사회에 가짜 학력에 대한 검증 선풍을 몰고 왔다. 당시 정치계와 관계 종교계 등에서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가짜 학력과 학위논문 표절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대졸자가 전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던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학사 학위로 평균 수준을 웃도는 상위 그룹에 들었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았다. 20세기 말, 국민 누구나 의무교육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대가 왔고 고졸자는 기회가 되면 누구나 대학 문을 두드렸다. 대학도 설립이 자유로워지면서 대학이 없는 시골 중소도시가 없을 지경이 돼버렸다. 드디어는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학식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풍토를 틈타 등장한 것이 대학들의 이른바 특수대학원 열풍이다. 여기엔 정부의 대학원 증원 정책도 편을 들었다. 그냥 학사 학위만으로는 상위 그룹에 포함될 수 없다는 무언의 사회적 합의가 대학원 간판이고 석사 박사 학위를 권했다. 지금 정치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과는 거꾸로 가는,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과는 차별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기능 중 하나가 석박사 학위이다.

우리 사회에는 유무형의 각종 차별이 엄존한다. 남녀간 성차별에서부터 단순히 문화적 차이를 넘어 다른 나라와 우리를 구분할 정도의 나이차별도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이 학력 차별이다. 이것 때문에 대학들이 많은 사람들의 허영과 사욕을 채워주면서 반대 급부를 챙기는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 학력을 위조하는 고급 사기에서 학위 논문을 표절하는 부도덕한 지식 절도 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연예인이라고 석사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연예인의 학구열을 탓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의 지적 욕구를 폄하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학위를 통한 사회적 성취와 개인적 성공을 잡으려는 그들의 의지에 존경심을 보낸다. 문제라면 그들에게 석사 학위를 부추기고 표절 논문에도 학위를 준 대학이 징계를 받아야 할 일 아닌가.

그건 그렇고 김혜수씨처럼 매력있고 예쁜 여배우라면 구태여 석사 아니라도 괜찮을 텐데.

    이경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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