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 ⑴ 포항 어링불의 근원, 일월지(日月池)

▲ 일월지 사적비
어링불은 지금 포스코 자리한 일대
현대 한국 경제원동력 중심지로 부상
연오랑세오녀 역사 곳곳 깃들고
이육사 시 `청포도` 탄생 배경되기도

`어링불`.

포항의 지명이다. 그러나 포항사람들도 이 곳이 어디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굳이 포항지명을 거명하지 않는다면 마치 외국어 아닌가 착각할 것 같다.

어링불은 포스코가 자리잡고 있는 옛 바닷가 넓은 모래밭과 그 일대를 지칭한다.

우리 선조들의 혼이 서린 곳,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산업의 쌀을 쏟아내 경제를 일으킨 원동력을 만든 자리다.

`두바퀴路` 첫 탐사를 하면서 어디를 처음으로 택할지 고민이 적잖았다. 회원들간 논의 끝에 그래도 포항의 역사가 서린 어링불이 채택됐다.

 

▲ (사)문화와시민 회원들과 청소년 기자단, 지역 출신 대학교수, 화가, 작가, 무용가, 사진작가, 도예가, 국악인, 그리고 봉사클럽 회장들이 지난 23일 포항 오천 해병대를 향해 자전거를 타고 있다.

포항사람도 잘 모르는 그곳으로 출발

“청소년과 함께 하는 자리니까 더 좋은 것 같아요”

역사학자 이영희 미래창조아카데미 교수는 `두바퀴路`기획 의도를 듣고는 흔쾌히 동행에 동의했다. 젊은 층이 포항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면서….

지난 23일, 청소년 기자단과 지역출신 대학교수, 화가, 작가, 무용가, 사진작가, 도예가, 국악인, 그리고 봉사클럽 회장들 등 이 사업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첫 탐방길.

포항 오천 해병대 가는 길은 완연 봄이었다. 예년보다 3월 기온이 올라가서인지 노란 개나리가 곳곳에 선을 보이며 자태를 뽐냈다. 그 풍경 속에서의 노란 깃발을 단 자전거 대열도 그림은 괜찮았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포항 오천 해병대.

간단한 신원조사 끝에 서문을 통과했다. 동행인들 중 누군가가 해병 창건 이래 민간 자전거 대열이 철통 경비대를 뚫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두바퀴路` 탐험대가 완만한 길을 따라 다다른 곳은 어링불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일월지(日月池)였다.

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사단법인 문화와시민 박계현 이사장은 자전거를 타고 떠난 첫 탐험이 남다른 듯 감회에 젖었다. 그는 “청소년들과 자전거를 타고 포항 구석구석을 한번 다녀 보는 것을 그토록 원했는데 이제야 첫 발을 디뎠다”며 회원들을 얼싸안았다.

포항이 낳은 역사학자 이영희 교수의 진면목은 여기서부터 빛났다. 이 교수는 청소년들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갔다.

“이곳을 알기 위해서는 신라 8대 아달라왕 즉위 4년인 서기 1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연오랑 세오녀가 도일(渡日), 즉 일본으로 가기 전이었지. 신라 석탈해왕의 후손인 연오는 이곳에서 세오가 사철을 녹여 만든 무쇠로 긴 칼을 만들었어. 그리고 모자반으로는 소금도 만들었지. 고대국가에서 `무쇠`와 `소금`은 권력의 상징이야. 형산강 모래에서 채취한 사철은 송진이 많은 적송 숯을 사용하여 무쇠라는 절대 권력의 도구로 탄생될 수 있었다고 보면 돼. 포항에 철이 생산되는 것이 어쩌면 필연이라 할 수 있어.”

일월지의 유래를 잘도 풀어나가는 이 교수다. 특히 스토리 전개가 압권이다.

 

▲ 일월지에서의 기념 촬영.

포항제철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사연

“삼국유사에는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는 통에 신라는 암흑천지가 되었다고 하고 있지. `제철공장`의 수장인 세오녀와 `단야공장`의 우두머리인 연오랑이 떠나면서 어링불 제철소의 불이 꺼졌음을 의미한다고 해석돼. 제철 기술자가 떠났으니 자연히 용광로 불빛으로 밝았던 몰개월(청림의 옛 지명, 뜻은 `모래[몰개] 위[우] 호수[얼]`라는 고어)은 어둠이 지배하게 되었을 테고. ”

“삼국은 제철에서 태어난 정권이라 할 수 있어. 특히 제철은 국가를 일으키고 지켜나가는 역할을 톡톡히 했지. 삼국 중 신라는 대단한 제철기술을 지닌 국가였지. 그 때문에 결국엔 삼국통일을 했고. 제철이 삼국통일의 가장 큰 동력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지.”

열강중인 이 교수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용광로의 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적송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곳 어링불의 숲은 그 양을 충족시키지 못했지. 연오랑 세오녀가 왜(倭), 즉 일본으로 떠나간 것은 그곳에 나무가 풍요로웠기 때문이기도 하지. 당시의 정황을 추정해보면, 경주 서라벌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포항 어링불을 무대로 한 세력다툼에서 종지부를 찍을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보여. 그것은 바로 `무쇠`였어.”

“삼국유사에서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제사를 올렸더니 다시 밝아졌다는 기록은 불이 꺼진 제철소를 다시 일으킬 비법을 비단에 적어 전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은 통일신라 이후에 불리게 된 점을 기억해야 해. 따라서 연오랑세오녀가 일본으로 간 그 당시 왜(倭)는 고대국가로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고 짐작돼. 연오랑세오녀가 간 일본 땅은 영일만에서 직선거리로 가면 나오는 일본 큐슈지역 쯤 인 것 같아. 거기에는 `왕비의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있어. 제철기술을 가져간 연오랑세오녀가 그곳에서 왕이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

물론 이 교수의 강의는 확인할 길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역사학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할 터. 한평생 연오랑세오녀를 연구해 온 노학자가 새삼 존경스럽다. 

 
민족시인의 시심을 자극하던 자취도

일월지는 연오랑세오녀 외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의 배경이 아닌가.

눈앞에 바라보이는 동해바다가 새롭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 이곳엔 만 평이나 되는 동양 최대인 삼륜포도원이 있었다한다. 안동이 고향인 민족시인 이육사는 1938년 여름, 몰개월에 사는 친구 집으로 요양을 왔고, 시인은 당시 포도밭이 자리한 일월지 주변과 영일만을 바라보며 광복을 염원하는 시 `청포도`를 지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중략)/아이야 우리 식탁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해와 달의 정기가 서린 일월지와 영일만에서 시인은 구국의 소망을 오롯이 시 속에 녹여냈다. 하필 다른 데도 아니고 이 곳 몰개월, 영일만에서 광복을 향한 열망과 확신을 마음에 새겼을까. 앞으로 `자전거 문화탐방`에서 두 바퀴를 저으며 우리 고장을 누빌 우리들이 풀어야 할 과제라는 것을 직감한다.

현재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는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위치해 있다. 하루빨리 일월지와 몰개월 포도원이 있던 곳으로 시비를 옮겼으면 좋을 듯 하다.

일월지 둘레 길을 따라 걸으며 연오랑 세오녀와 정몽주, 이육사를 떠올린다. 흙바닥을 구르는 솔방울에서도, 담방담방 물비늘을 일렁거리게 하는 차가운 바람결에서도 포항 어링불의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대표집필=모성은 지방행정연수원 교수

△문화특강=이영희 미래창조아카데미 교수

△청소년기자단=강소리, 최민주, 방서영

△집필지도=정혜 작가

△사진촬영=안성용 사진작가

△동행취재단=박계현, 권혁대, 이선덕, 임희도, 김효은, 박종일, 오기준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협찬=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청소년기자단=강소리, 최민주, 방서영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